진료실 이야기
© ninanaction, 출처 Unsplash
얼마 전부터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를 하면서 하루가 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침에 고요하게 집중하는 시간이 없으면, 또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더 정신차리고 하루를 보낸다. 더 소중한 하루를 만들어 나간다.
하루를 보내며 수많은 환자분들이 해주는 이야기들 중 몇가지 일들을 적어본다. 황당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귀여운 환자분들도 있고, 삶의 지혜를 전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나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분들이 많기에 죽음과 관련된 슬픈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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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을 하셔서 이제 금연 성공하고 유지하고 계신 60대 여자 환자분이 오셨다. 대화를 하며,
“담배 계속 안 피우고 있으신 거죠?”
여쭤보니 안 피운다며 담배 피우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 주신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하니 어른들이 그러면 담배를 피워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배운 것을 지금까지 피웠다고… 이제 안 피우겠다고 하신다. 에효, 도대체 누가 임산부에게 담배를 가르쳤단 말인가!!
이야기는 황당하지만 그 이야기를 웃으며 해주시는 할머니는 천진난만하고 귀엽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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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이 넘으신 할머니 진료 다 보고 문 열고 나가다가 다시 돌아오시더니 할 얘기가 있다고 내 귀에 대고 속닥속닥 말을 하신다. 보통 그러면 갑자기 생각난 증상이나 병에 관련된 질문이 대부분인데 오늘은 그런 게 아니었다.
“노인들이 늙어서 이제 죽어야지 하는 거 그거 다 거짓말이야.”
라며 내가 모를까 봐 비밀을 알려주시는 듯 말씀하시는데 대답은 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본다.
‘당연하지요.’
그리고 다시 나가며 가족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딸이 하나 있는데 여태껏 결혼도 안 하고 집도 없이 살다가 이번에 집을 하나 구했어. 이제 마음 편히 눈 감을 수 있겠어.”
아니 죽는다는 말 거짓말이라고 금방 말씀하신 분이 눈 감는 이야기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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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당뇨환자분이 오셔서 소모성 재료 처방전을 써달라고 하신다. 소모성 재료는 인슐린 주사를 맞는 환자들에게 인슐린 맞을 때 필요한 주삿바늘, 혈당을 집에서 측정할 때 필요한 재료들을 말하는 것으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고 보통 3개월마다 받아 간다.
기억을 보니 아직 처방전을 받아 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달라고 하는 경우이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 처방전을 받아 가셨고, 아직 한 달이 안 되었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비가 많이 와서 집에 물건들이 다 침수되어서 못쓰게 되었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 어떤 말로 위로를 해드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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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셨어요?”
인사를 하면 항상
“내가 시집살이를 너무 독하게 해서 내 마음에 한이 사라지지 않아 많이 힘들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
시누이, 시어머니 이야기 항상 짧은 진료시간이지만 이야기하고 가신다. 혈압, 당뇨와는 상관없지만 이야기할데가 없다며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분에게는 혈압, 당뇨만큼이나 그분에게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진료를 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분들의 삶의 일부를 나에게 공유해 주신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위로의 말을 건네보지만 내가 하는 짧은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경험해 보니, 그분에게는 그 이야기를 하고 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공감하며 들어드리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힘이 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이야기를 들으면 진료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