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엄마. 나 진짜 독립할래."
"안돼. 넌 아직 너무 어려"
도대체 독립할 수 있는 시기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방 한 칸의 온기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주아주 오래된 옛날 집. 방 한 칸에 "엄마 아빠 동생 나", 다른 작은 방엔 "할머니, 할아버지" 화장실은 실외에 푸세식 화장실, 욕실은 문이 없는 아주아주 열악한 환경. 그 집에서 열아홉까지 살았다. 밤엔 천장에서 쥐들이 싸우고, 밖에선 고양이들이 싸운다. 실외에 있는 화장실은 정말 가기 싫었다. 불가피하게 가야 할 상황이라면 편의점 화장실을 이용했다. 프라이버시는 절대 챙길 수 없는 환경이었고, 가족 중 누군가와 싸워도 도피할 곳은 전혀 없었다. 이 기억들이 나쁜 기억들로 남아있진 않다. 오히려 옹기종기 모여 생활했던 그때가 그리울 적도 있으니까.
스물셋 첫 독립선언
성인이 되고 난 후 꾸준하게 독립을 신청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풉 네가 무슨". 항상 이런 식이 었다. 그럼 강아지라도 키우게 해달라고 조르고 졸라 데려왔다. 솜뭉치 같은 "스피츠" 이름은 "탱이". 어느덧 탱이와 함께 산지 2년. 스물셋이 되었다. 탱이를 데려온 후 나와 엄마의 싸움은 점점 더 잦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동물 자체를 싫어한다. 비위도 약하고 실내에서 같이 산다는 건 정말 지옥이었을 테니까. 이렇게 지내는 탱이도, 나도, 엄마도 스트레스 가득인 것 같아 진중하게 얘기를 꺼냈다. "엄마. 나 진짜 독립할래" 나름 진지하게 입을 앙 다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나. "안돼. 넌 아직 너무 어려." 모든 엄마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었다. 한없이 어리게만 보는 것. "나 이제 스물셋이고, 돈도 벌고 있고, 탱이 내가 데려왔으니까 내가 데리고 나갈게. 그게 엄마한테도 좋을 걸? 일주일에 한 번씩 올게." 온갖 꿀 바른말들은 던졌지만 아쉽게도 엄마는 곰이 아니었다. 결국은 서로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싸웠다. 그렇게 난 첫 독립을 준비했다.
집 구하기
나의 첫 보금자리에 대한 로망은 항상 같았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비데가 있는 화장실" 이 두 가지만 충족한다면 합격이다. 내 첫 독립은 멀리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하기로 합의했다. 남들은 같은 동네에서 독립할 거면 뭐하러 하냐고 묻지만, 독립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내 단독 보금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기에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고 계약을 했다. (사실 정말 맘에 드는 집은 따로 있었는데 1000/60 이란다. 나에겐 아직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는걸) 입주하기 하루 전 날 입주청소를 했고, 커튼도 달았다. 그리고 입주를 했다. 침대는 새로 구매했기에 문제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짐이 너무 많아서 애를 먹었다. 이사 두 번 했다간 몸살 걸리겠는걸. 새로운 보금자리에서의 첫 잠자리는 기분이 멜랑꼴리 했다. 이십년을 한 방에서 자다 텅 빈 공간에서 혼자 자려니.. 그럴 만도.
포근한 집 만들기
이제 내가 머물 공간도 생겼으니, 내가 원하던 집으로 바꿔줄 차례다. 머릿속으로 그려놨던 이미지와 찾아놨던 레퍼런스들을 토대로 하나씩 하나씩 구매를 해보려고 한다. 자질구레한 생필품들은 다 구매를 했고, 인테리어 소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화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걸? 그중에서도 열매가 열리는 과실수가 좋겠어. 며칠을 서핑해서 찾아낸 유주 나무. 어버이날 카네이션 빼고는 처음 구매해보는 식물이다. 역시 화분을 들여놓으니 집 안 분위기가 훨씬 따뜻해진 느낌. 나만 그래?
바닥이 좀 휑한데..? 한 번 휑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계속 휑해 보였다. 탱이도 미끄러워하는 거 같아서 러그를 구매했다. 아직은 겨울이니까 좀 포근한 느낌으로 가자. 터치미 러그를 깔아줬더니 탱이도 나도 대만족이다. 집 꾸미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어쩌면 이쪽이 내 길인가?
식물이 공간에 미치는 힘은 상당했다. 한층 더 따뜻하게 만들어줬고, 무엇보다 온기가 느껴진달까? 식물을 기르는 사람은 왠지 마음의 여유가 있을 거 같고 막 그런 느낌. 그리고 식물 키우는 재미가 은근 쏠쏠하단 말이지. 그렇게 나는 식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올리브 나무를 구입했다. 그 뒤로도 공기청정 능력이 있는 틸란드시아, 몬스테라까지 현재 식물이 총 네 가지. 마음의 여유가 쌓여가고 있다.
독립하면 어때요?
독립한 지 벌써 3년. 필자는 독립해서 잃는 거보다 얻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언젠간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생활을 해야 한다. 울타리에서 벗어난다는 게 부모를 등지고 떠난다는 뜻이 아닌,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자립심을 말하는 것이다. 본가를 떠나 혼자 산다는 건 굉장히 외롭고 힘든 일이다. 모든 걸 혼자서 해내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경험치다. 나중에는 경험치가 쌓여 내공이 탄탄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수명이 끝난 전구를 혼자서 갈 수 있는가?" "도어락의 비밀번호는 바꿀 수 있는가?" "공과금은 어떻게 내는지 아는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은 직접 경험해야지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독립하며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까웠던 적도 있다. "이 돈을 내가 통장에 모아뒀다면 지금은 많이 모였을 텐데.."그렇게 생각하면 한없이 아까워진다. 하지만 그 돈은 내 인생에서 자립심을 구매하는 비용으로 치고 있다. 모든 것에 공짜는 없다. 하물며 쓰레기를 버릴 때도 종량제 봉투값이 들어가는데,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땐 당연히 대가가 필요하다. 필자는 아직도 장 볼 때가 설렌다. 마치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집의 냉장고를 내가 먹고 싶은 것들로 내 돈을 들여서 채워 넣는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어른이 되는 것 아닐까?
독립에 적당한 시기는 누가 정해주지 않는다. 단지 본인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 어차피 시작하면 모든 걸 혼자 행해야 할 것들. 무엇이 두려우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