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날다

10 어느 보안승무원의 잘못된 구애.

by 최성길

“보안”이란 말은 언제나 들어왔던 낯설지 않은 단어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안승무원”이란 말 또한 생소하지 않게 받아들여졌었다. 하지만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느끼는 생경함 같이 외부 사람들이 갖는 이 말에 대한 느낌은 우리가 갖는 이해와 많이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는 하지만 민간항공의 객실에 권총을 반입한다는 현실에 의문과 이질감을 재기했던 외국인 동료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우리의 상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 당황했었고 모두에게 이해받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만 경험했던 현실에 어색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보안승무원은 그 존재만으로 승객들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취약했던 보안의 개념을 상기시키는 예전의 우리 사회 모습의 일부였었다. 그런데도 이제야 얘기할 수 있는 감추어진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흥미롭다.

지금은 퇴역하여 존재하지 않는 보잉 707 (B707) 비행기가 우리나라와 미국을 오갈 때의 일이다. 해외여행이 흔치 않았고 제한된 시절이었던 많큼 조종사와 여승무원들의 사회적 위상도 지금 같지는 않은 시절이었다. 객실의 서비스를 담당하는 승무원들과 별도로 항공기 전체의 안전을 담당하는 경찰 신분의 보안승무원이 권총을 휴대하고 탑승하여 같은 공간에서 근무했었다. 앞에서 언급이 되었듯이 우리나라 남북한 현실의 복잡성이 항공기 기내에서도 반영되는 장면이었다.

시카고에서 서울 김포공항으로의 비행에서였다. 장거리 비행에 피곤해진 한 여승무원이 휴식을 위해 항공기 뒤편의 승무원 석에 앉았다. 뒤편을 서성이며 업무 중이던 보안승무원도 여승무원의 옆자리에 따라 앉았다. 사실 해당 보안승무원은 옆의 여승무원에 오랫동안 이성의 감정을 품고 있었고 처음으로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었다. 근사한 커피숍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공교롭게 자신들의 근무 현장이고 처음 대면에 정복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사랑을 구하는 묘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버려지고 황폐한 땅에서도 꽃은 피고 전쟁터에서도 아이는 태어나듯이 사랑의 가능성은 어디서나 순을 피우고 젊음의 열정과 잠재력은 상상하기 힘든 것을 가능케 하지 않던가. 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로 시작했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보안승무원은 자신의 철두철미한 근무 의식과 개인감정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성과의 대화가 익숙지 않았던 시절, 순진한 남성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혼돈 속으로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이는 어찌 보면 설정된 환경 자체에서부터 잘못되었음을 예감케 하고 준비되지 않은 게임임을 직감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쓸데없이 저돌적이었다. 누군가에게 코치를 받지 않았나 생각도 해보게 된다. 상대 여승무원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뜻밖의 상황에 여승무원은 당황했고 당연히 상대방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는 멋있고 반듯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 여승무원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여자들의 마음은 그렇게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강직하고 순진한 젊은 보안승무원에게는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본질보다는 그들 마음의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고 전달 방식과 포장하는 기술로 열리는 보석 상자라는 것을 강직한 청년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상대방은 모르고 있었다. 비행 후 만나줄 것을 종용했고 여승무원은 당연히 거절했다. 글쎄, 요즘 세상 같으면 제의가 받아들여지고 상대방의 의사 표현에 대해 쿨하게 대응했을지도 모르겠다. 판단은 후에 해도 될 테니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녀관계를 그가 속한 조직의 상하관계 정도로 착각을 한 것일까. 아니면 힘과 충격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제압하려 한 것일까. 그는 권총을 꺼냈고 자기 말을 들어줄 것을 채근했다. 권총으로 얻을 수 있는 마음은 지키기 위해서도 언제나 권총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쏘겠다는 선을 넘은 농담을 하게 되었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의 큐피드 대신 여승무원의 허벅지에 총알이 관통되는 일이 발생했다.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여승무원의 목숨은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탑승자 중 의사는 없었고 기내의 구급상자에 의한 대처는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빨리 착륙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민간 공항에 도달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다행히 기수를 틀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미 공군 기지에 비상착륙을 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인 어느 투철한 보안승무원의 어이없는 사랑의 불발탄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비누 거품의 방울을 손에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위력 또는 값진 장비보다는 부드럽고 정성이 깃들어진 무언가가 필요하다. 방법이 맞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도 실패할 경우가 많이 있다. 세상을 대처하는 방법으로 무모함과 기발함은 서로 옆옆에 놓인 선택지와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논리와 이치와는 다르게 발휘되기도 한다. 어디에든 적절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얻는 방법은 존재할 것이다. 묘수는 상식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찾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본다.


어느 보안승무원의 무모한 사랑은 이렇게 위험한 장난으로 끝이 났다. 이제 고인이 되신 당시 기장님은 나와 동기들에게 비행을 가르쳐 주셨던 비행 훈련 원장님이셨다. 비행에 대한 꿈과 이상을 심어주시며 한낮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비행중에 있었던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해주시며 미소 짓던 노 선배님의 모습이 아직도 아득하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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