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크리스마스의 추억
명절과 축제 그리고 기억할 만한 날들이 많이 있지만 각각의 날들이 다르게 기다려지고 설렘을 준다. 기대와 추억을 불러내는 기억과 의식 속의 요인들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우리의 마음을 가장 움직이는 것은 계절과 시기가 주는 정서적인 요인일 것이다.
봄에 맞이하는 축제는 희망과 바람 등 다가올 것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고 여름은 젊음과 열정 왕성함과 욕망을 대변한다. 가을은 풍성함과 함께 돌아봄과 회한과 결실을 겨울은 아쉬움과 동경 기다림과 그리움 그리고 기원과 소망 등의 정서적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내 마음의 중심에서 일 년을 기다리게 하는 동경이었다. 막상 그날이 되면 별반 특별한 일없이 보낸 것이 대부분이었음에도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 날의 간절함은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대부분 부모에게 별 공감과 감흥이 없었던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날이었다. 서양의 색다르고 풍성한 파티 분위기는 언제나 어린이들의 엷은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거리에 흐르는 캐럴과 화려한 풍경들 그리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밝고 이색적인 분위기는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에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쉽게 잦아들었다.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부족했던 시절, 창가에 기대어 어둠 속의 하늘과 별을 쳐다보며 주체할 수 없었던 설렘을 달레는 것이 고작이었다. 차가운 어둠 속으로 울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알 수 없이 두근거리는 마음과 그리움을 삯이 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러다 잠에 이끌려 아침을 맞았던 날들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후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겨울밤의 창가와 깜깜했던 하늘과 별과 교회 종소리의 여운과 같이 맞이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는 12월의 거리는 점점 밝아지고 트리의 불빛은 화려해졌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과 같이하는 파티는 항상 특별하고 즐거운 추억을 준다. 자신이 경험했던 초라한 마음의 크리스마스를 아이들이 경험하지 않도록 풍성한 선물과 기쁨을 안겨주려 노력을 해었다. 하지만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나의 기대는 언제나 그 시절 느꼈던 창가의 한기와 겨울밤과 별들과 학교에서 나누어주던 크리스마스씰(Christmas Seal)과 같은 것들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계절이 되면 나도 모르게 그때의 한기와 겨울밤을 기다리고 그 시절 삯이든 기다림과 아쉬움과 동경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세상이 너무 풍족해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는 그나마 간직하고픈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소년 시절 마음에 스몄던 크리스마스의 잔영은 더 이상 찾기가 수월치가 않다. 그런데도 크리스마스는 항상 차가운 겨울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은 변하지 않는 신념처럼 아직도 나의 의식과 감성 속에 젖어 남아 있다.
세계의 여러 곳을 비행하면서 다양한 크리스마스를 경험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맞은 크리스마스는 겨울철에 맞는다는 점에서 큰 이질감이 없었다. 가족이 중심이 되는 환경과 차분하고 부산하지 않은 분위기가 오히려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 맞이했던 크리스마스는 집마다 밖에 장식했던 크리스마스와 가족끼리 나누던 칠면조 요리와 애플파이를 즐기던 경험을 잊을 수없다. 우리 가족을 초대했었던 휴이츤 부부의 따뜻하고 다감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약사였던 휴이츤씨를 도와 몇 시간 동안 칠면조를 삶고 파이를 만드는 동안 아이들과 아내들은 온종일 숨바꼭질과 게임을 하고 놀았었다. 방 하나를 가득 메웠던 장난감 레일과 기차는 아이들이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다. 그때 먹었던 칠면조가 나의 유일한 미국식 크리스마스 요리였었다.
유럽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이브는 개인적으로 너무 초라한 기억이었다. 오래전 크리스마스이브에 코펜하겐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맞는 유럽에서의 성탄절 이브였기 때문에 기대감이 컸었다. 부기장과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유럽에서 맞을 크리스마스를 근사하게 상상했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 안에서 연신 바깥을 내다보았다. 거리는 한산하고 겨울의 냉기로 싸늘했다. 군데군데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으로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을 겨우 알 수 있을 뿐 이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로비는 평상시보다 한가했다. 체크인하고 방키를 받고 “왜이래 한산한가” 하고 사환에게 물어봤다. 어깨를 움찔하듯 치켜올리면서 크리스마스라 그렇다고 얘기했다. 무슨 소린지 이해할수 없어 다시 물어보았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이해되면서도 이제까지 경험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와는 달랐기 때문에 어색함과 실망감이 교차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로비에서 부기장을 만난 이후 유럽의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하고 나간 거리에는 단 한 곳의 문을 연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즐비하게 늘어섰던 식당과 까페, 간이 주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항상 많은 인파로 북적였던 워킹 거리는 썰렁했다. 호텔로 돌아와 호텔 내의 식당마저도 닫혀있는 것을 보고 삭막함마저 느꼈다. 겨우 찾은 호텔 모서리의 편의점에서 소시지 몇 개로 저녁 식사를 겨우 해결 할 수 있었다.
동남아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계절이 주는 정서와 기대가 전혀 다르기 때문일까? 예전부터 지속되어 기다려왔던 크리스마스의 동경과 그리움은 찾아볼 수 없다. 겨울의 시작부터 시작됐던 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의 느낌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불빛으로 반짝이고 백화점과 상점에는 성탄 선물이 즐비해 있어도 별 감흥을 느낄 수가 없다. 실내에 울려 퍼지는 캐럴에 잠시 마음이 동하였다가도 밖으로 나오면 적도의 열기 속에 크리스마스는 녹아내리는 어름처럼 금방 증발해버린다. 교회에서는 성탄 행사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행사를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소란스럽지 않다. 아이들마저도 별 반응이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거실의 작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산타할아버지를 위해 우유 한 잔과 비스킷을 준비해놓게 하고 다음 날 아침 반쯤 비워진 우유 잔을 보고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갔음을 확신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 사라진 기억이 되었다. 트리 옆에 놓인 선물박스를 보고 좋아했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덩달아 행복했던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커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종교나 문화의 영향도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남아와 중동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국가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크리스마스에 관한 관심과 감흥은 남다르다.
매해 12월이 되면 한해를 정리하며 크리스마스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술렁인다. 하지만 적도 지역에 살아온 십여 년 동안 연말과 세모 크리스마스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열대우림의 열기와 습도에 묻혀 잊은 지 오래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에 맞는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 축하하고 즐기지만,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계절과 날씨의 영향은 춥고 덥고의 차이와 외형적인 삶의 형태뿐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와 성향, 관심과 기호에까지 많은 영향을 주는듯하다.
가끔 예전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마저 그 시절로 되돌아감을 경험한다. 문득 그 시절 걸었던 어느 길가, 석양에 비치는 작은 마을의 모습, 산비탈의 갈대들, 겨울날의 호수등 젊은 시절 언젠가 지나쳤을 장소들이 두서없이 찾아와 마음을 아리게 한다. 지난날 살아왔던 삶의 편린들은 어느 계절, 어느 시기에 걸어왔던 나의 흔적들이고 해마다 그 계절이 되면 추억의 이름으로 다시 찾아온다. 우연히 마주치는 그 시절의 노래 한 소절로 학창 시절의 빵집과 교복을 입었던 친구들의 풋풋함을 만나듯, 문득 찾아온 계절을 통해, 스며드는 그 계절의 냉기를 통해 그 시절 크리스마스의 가난한 마음이 다시 한번 스며들기를 기대해본다.
돌아오는 12월에는 소년 시절 몸살을 앓듯 그리던 크리스마스의 서글픔과 가난한 마음을 다시 만나고 싶다. 동경과 그리움이 사라진 시대, 가난한 마음으로 풍족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