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귀신사건
1997년 괌사고 이후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이전에 높았던 사고율에 조종사들의 자성 소리가 높아지고 회사 차원에서 그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았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해외 발령을 마치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국내에 다시 적응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항공법규나 비행 규율의 문제가 국제기준에 맞춰져야 한다는 조종사 간의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회사와 주변에서도 문제의식을 같이하면서 항공 발전에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괌사고는 이미 국제적으로 실추되었던 한국 조종사의 자존심과 조종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의 커다란 충격과 회의를 안겨 주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음울했던 분위기는 한동안 지속해서 연장되었다. 이제 기장 승급훈련을 받고 있었고 훈련에 발맞추어 이제까지 있었던 부정적 시류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동기들은 동시에 깊은 정신적인 슬럼프를 경험하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는 있는 것인가?” 조종사 사회의 전반에 자조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한 가운데 이상한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믿을 수 없는 해괴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몇몇 기종 부서(Department)에서는 안전교육과 소문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최첨단의 비행기를 운영하는 사람들이고 과학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이러한 해괴한 시험을 경험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소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승무원들이 체류하는 부산의 모 호텔 어느 특정 객실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에 의해 목격되었고 그 소문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어느 승무원은 구체적으로 자기 경험을 이야기했다.
김포발 부산행 마지막 비행은 다음 날 아침 서울로 일찍 여행하는 승객을 위해 비행기와 같이 부산에서 체류한다. 승무원들은 호텔에 와서 늦은 저녁을 마치고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면 열 시 정도가 된다. 다음날 일찍 비행해야 하므로 다들 일찍 휴식에 들어간다. 여승무원 A양도 일찍이 잠자리를 청했다. A양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통 한 시간 정도의 뒤척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금방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다. 비행 중 재미있었던 일, 실수했던 일들과 사무장에게 들었던 가벼운 핀잔 등을 떠올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몸을 반듯이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머릿속의 생각들을 비우기 위해 기도하듯이 수면을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자꾸 흐트러지고 눈까풀은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따라 생각은 꼬리를 물고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뜨면 집중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 가끔 눈까풀은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고 A양은 눈을 살며시 뜨고 말았다.
순간 “헉” 전신을 누르는 듯한 분위기와 이미지에 전율을 느끼며 뛰쳐나갔다. 혼이 나간 듯 엉엉 울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잠깐의 시간을 두고 바깥의 혼란에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동료들의 토닥임에도 A양의 공포와 흐느낌은 멈추질 않았다. A양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토해내듯 울부짖으며 얘기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더니 어떤 사람이 본인 얼굴 위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쳐다보고 있던 그 사람은 괌 사고에서 순직한 모 여승무원이었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사무장은 A양이 피곤하고 마음이 허해져서 그럴 거라고 단정하고 기장에 보고도 하지 않고 문제를 덮었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해서 같은 호텔 같은 방에서 다른 승무원에게도 일어나는 사태로 발전을 했다.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고 괴담은 눈덩이처럼 재생산되어 회사 전체로 퍼졌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장님들도 그리고 해당 방에서 체류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해당 비행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 했고 해당 호텔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제 이 괴담은 비행안전에 중요한 저해 요인이 되었고 회사 차원에서의 대처가 필요했다. 회사에서는 괴담의 사실 여부와 출처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각 비행 소마다 관련 사건에 대한 실태 파악과 계몽을 위한 안전 회의가 진행되었다. 호텔 측에서는 해당 객실뿐 아니라 전 객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호텔 측에서는 경찰의 협조까지 요청했다. 그리고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의 믿음은 때로 옳고 그름과 순리와 사실 그리고 자연의 이치에 지배받지 않고 주입과 몰입, 결심에 의해서도 지배되어 불가능한 일이 실현되는 듯 보이고 그것을 믿는 조화롭지 않은 부분이 있고, 주변의 부추김에 따라 가속화되는 미숙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사이비 종교 행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결국 지속되는 추적조사 끝에 어느 입담 좋은 승무원의 꾸며낸 이야기로 결론이 낳다. 한 호사가의 어처구니없는 입담으로 일이 이렇게 커졌다. 후에 밝혀졌지만, A양의 정체 또한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었고 꾸며낸 이야기에서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이 커졌던 것이었다.
평소 귀신의 존재에 대해 콧방귀를 끼고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많은 사람은 그에 영향을 받았다. 나를 포함하여 귀신 이야기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학적 사고로 무장되고 첨단화에 익숙한 인간의 사고체계의 나약함에 대해 조소를 머금게 된다. “인간”의 불확실성과 “도정의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확인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