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날다

3.야간비행

by 최성길


석양이 내려앉는 해 질 녘의 하늘은 편안하다. 노을을 비켜 내리는 햇살은 부드럽고 하루의 쉼을 예고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서두르고 그들을 실은 비행기는 낮과 저녁의 경계를 지나서 밤의 언저리로 향한다.

풀이 꺾인 저녁 햇살에 얹혀있는 비행물체는 멈춘 듯 점으로 움직이며 시나브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어둠은 그의 뒤를 따라오며 또 하루를 지나간 시간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내려앉는 태양과 같이 조종석에도 어둠은 찾아오고 빛이 있을 때는 구별이 되지 않던 각종 계기는 생기를 찾고 찬란하게 그들만의 빛의 각축을 벌인다. 기능과 특성에 맞게 채색이 된 수많은 계기는 머리 위에서 얼굴 앞에서 아래에서 등 뒤에서 사방에서 그들의 선명성을 다투기 시작한다.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형상과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국자의 형상이 되기도 하고 전갈이 되어 이야기한다.

석양의 뒤쪽으로 사라진 비행물체는 점점 선명한 빛으로 어둠 저편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한다. 멀리에서 누군가 응시하고 있을 작은 비행물체에는 동화처럼 오늘은 내가 그곳에 앉아 있다.


“야간비행”이란 정의상 일몰 직후부터 일출까지의 비행을 말하며 공식적인 일몰과 일출 시각은 태양의 위쪽이 지평선 아래로 또는 위로 내려가고 올라오는 시간을 말하며 해당 지역의 기상관측기관에서 매일 공시한다. 공중에서 느끼는 일몰과 일출은 지형과 고도의 영향으로 지상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길게는 삼십 분 또는 한 시간까지 일몰의 시간이 늦고 일출이 지상에서보다 먼저 찾아온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속 “야간비행”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일은 언제나 아름답게 각색되어 기억되고 힘들었던 일들도 모가 둥글어져 마음에 남듯이 사람들은 소설 속의 일들을 어느 시대에 있을 법한 낭만 정도로 기억하며 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몰 이후에 비행한다는 점과 목적지에 정해진 시간에 도착 돼야 하는 정시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제약된 시간과 환경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변할 수 없는 인간의 일에 대한 자세이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기술과 환경의 변화와 함께 커다랗게 다르다. 제트 엔진과 프로펠러 엔진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모든 것이 수동으로 이루어지던 시절 몇 시간 동안 조종간을 움켜쥐고 어둠과 악기상 조건을 사람의 오감에 의존하여 목적지까지 비행한다는 사실은 현재의 안목으로 보자면 목숨을 담보한 위험한 모험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모한 일상은 그 시절을 대표되는 최첨단이었다. 오늘날 상식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먼 훗날 무모한 일로 기억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무튼 그 시절에는 추운 겨울에도 두꺼운 외투와 바지로 난방시스템을 대신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치 짙은 밀림 속에서 헤매듯이 하늘의 길을 찾아갔으며, 기상 레이다 시설은 아직 환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당시 조종사들의 고군분투에 머리가 숙어질 뿐이고 이 시대의 조종사로 태어남을 감사할 따름이다.

태평양 상공의 밤은 그 길이만큼이나 유난히 길다. 달이 없는 밤은 더욱 길어지고 막연함만이 존재한다. 교신마저 뜸해 정적만이 감돌고 지속되는 엔진소리는 감각기관에서 생성되는 소리처럼 나의 일부가 되어 마치 정적의 요소처럼 그렇게 흐른다. 가끔 샌프란시스코 에어 링크 (San Francisco Air link)에서 부르는 “딩동” 차임의 HF 호출만이 의식을 일깨운다.

주기적인 연료 체크와 계기판독이 이루어지고 교신을 기다리는 일 외에 기장과 부기장도 어둠과 막연함 속에 묻혀있다. 생텍쥐페리 시대의 조종사들은 이 시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장비와 시설의 한계로 인해 태평양을 횡단 하는 것은 꿈에도 꾸지 못했을 것이고 여압장치와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높은 고도를 취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비행 중 만나는 각종 구름과 기상현상은 어떻게 대처하고 회피했을까? 사투에 가까운 기상과 어둠과의 싸움은 매일 매일 그들의 비행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어둠은 어디엔가 도착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고 비행 루트의 한 부분이었다. 야간비행에 부딪는 밤의 막연함은 현대의 기술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여유이고, 망 중의 달콤한 낭만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준다.

별들을 헤아리며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별자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에 숨긴 이야기를 더듬어 보기도 한다. 둥근 달이라도 하늘에 걸려 있으면 비행은 한결 수월해진다. 해면에 내려앉은 달의 반사는 아련하고 하늘은 더욱 처연해진다.

어둠 속에서 가끔 나 자신에게 진지해지는 때가 있다. 계속되는 밤과의 만남은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존재에 관한 두서없는 생각을 하기도하고, 보이지 않음을 관조하며 무념 속에 맥락 없는 멍때림의 시간으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는 때가 있다. 무사유(無思惟)의 시간이 익숙한 시간 같고 몸을 씻어내듯 마음의 청정함이 느껴지는 호젓함을 느끼는 시간이 있다.

달빛에 젖은 어둠은 한결 순화되어있다. 은백색의 공간을 비행하며 둥글게 형성되어 있는 곡면을 느끼고 마치 커다란 투명한 유리구슬 속을 유영(游泳)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만히 달을 주시하면서 옛날 아이들이 왜 토끼가 절구질한다고 했는지 확인하게 되고 그 속에 토끼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선조의 상상력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겨울철에는 북위도 지역에 형성된 강한 바람인 제트기류를 배풍으로 받기 위해 북위도 지역과 앵커리지 지역의 상공으로 비행한다. 기압 고도계의 특성상 추운 겨울에는 여름에 비해 계기에 지시하는 고도보다 실제 훨씬 낮게 비행한다. 불빛들은 한결 가깝게 느껴질 즈음 불현듯 겨울철 북위 도의 광활한 하늘 어느 곳에 나타나는 오로라(Northern Light) 현상과 만난다. 사전상의 뜻은 “태양에서 방출된 입자 일부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하면서 공기 분자와 반응하여 빛을 내는 현상”이라고 되어있는데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구체적 색상으로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보라색 내지는 그보다 옅은 색을 띠고 있다. 급격하게 또는 서서히 줄기처럼 움직이는 오로라의 현상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신비하고 경외감을 준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행운을 뜻한다고 알려져 이를 만난 날은 로또를 샀던 기억이 난다.

인도양의 밤은 언제나 더욱 까맣고 청명함을 느낀다. 인도양에 형성된 항로는 인도의 목적지를 향하거나 중동이나 유럽 또는 서쪽으로 계속 진행해 아프리카의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경유한다. 특히 동남아의 많은 국가나 호주 등지에서 출발한 항공기들이 인도양 상공의 항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양은 좌측으로 인도와 스리랑카 우측으로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로 감싸여진 부분과 그 아랫부분의 대양을 일컬으며 태평양, 대서양과 함께 세계 삼대 대양에 속한다.

카레 향이 짙게 배어 있는 듯한 독특한 영어 발음이 인도양에 진입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인도양의 밤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 차 있다. 인도사람들의 꿈과 기원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까?

야간비행은 주간 비행과 구별되는 특성과 매력이 있다. 물리적인 특성뿐 아니라 밤이 주는 고요함과 침잠 성은 문득 어머니의 뱃속을 떠올리게 하고 상상력을 태고 시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밤은 영원(永遠)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유인원조차도 생겨나기 이전인 몇백만 전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또한 그날이 온다면 인류 이후의 모습도 밤의 모습이 아닐까.


딩동! 교신을 알리는 HF(High Frequency)의 호출음이 다시 나의 임무를 일깨워준다. 육중한 고철의 비행기와 나는 자유가 되어 날아가고 밤은 무념의 강이 되어 흐른다. 사람들의 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밤은 간직하고 있고 그들의 상상력을 통해 하나하나 동화처럼 보여준다. 유년 시절 어머니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하고 예전의 모습으로 나를 되돌리기도 한다. 어둠은 사람을 잠재우기도 하지만 마음속의 진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야간비행은 계속된다. 생텍쥐페리가 날았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간직되어있는 상상의 괘적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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