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날다

4. 키티호크의 도전과 인간의 상상

by 최성길

산책하듯 걸어왔던 길을 되걸어보는 것은 추억 이상의 뜻이 있다. 지난 자취와 쌓인 기억은 돌아봄을 통해서 때로 새로운 의미로 탄생함을 느끼게 된다. 그때 그 시절 그 일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고 추억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모습으로 귀결된 과거를 다시 밟아보는 것은 지난 삶을 곱씹어보고 다가올 인생의 항로에 대한 지혜를 찾는 여행과 같다. 지나온 비행과 삶을 산책하며 뒤돌아본다. 조종사로서 세상을 날기 위해 인류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초기 조종사들의 역사에는 어떤 것들을 담고 있을지 이해하고 나누는 것에서부터 마음의 산책을 시작하려 한다.

키티호크(Kitty Hawk) 언덕에서 처음으로 동력 비행을 성공한 라이트(Wright)형제의 도전 이후 인류의 창공과 비행에 대한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다. 처음으로 자체 동력을 이용하여 비행물체를 하늘로 띄워올린 그들의 기록은 12초, 거리로는 43미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는 수천 년간 인류의 꿈과 염원을 거쳐 이루어낸 비상이었고 역사적인 날갯짓이었다. 어린아이가 처음 자신의 힘으로 걷기까지는 수천 번의 넘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듯 이들의 배후에는 간절한 인류의 염원과 함께 많은 모험가의 고뇌와 실패를 거친 축적된 경험들이 있었다.

1800년대 말 이후 비행에 관한 관심과 시도는 이전 어느 때보다 집중되었던 시기였다.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을 중심으로 날기 위한 시도와 실패는 계속되었으며 궤도 수정과 새로운 시험 또한 지속되었다. 당시에는 대부분 연처럼 줄을 매달아 공중으로 띄워 올리는 글라이더의 형태였으며 사람을 싣고 부양시키는 시도와 희생이 이어졌다.

여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막연한 시도와 실패 그리고 발견과 연구의 과정 등을 상상해볼 수 있다. 점차 공중을 나는 것은 바람과의 관계 즉 바람에 의해 생기는 양력(물체를 띄우는 힘)과 항력과의 관계가 밀접하게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연구하고 적용해보며 과정은 지난한 실패와 좌절의 과정이었다. 비행에 대한 상상과 시도들은 라이트형제의 영감 속에서도 점화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매일 매일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바람의 스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연구하는 시설 즉, 풍동 실험 장치를 설치하는 그들의 기발함과 비행 연구에 적용하는 발상은 비행에 있어서 신대륙의 발견과 비유할 만한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그들의 상상력이 인고의 시간을 거치며 인류를 오늘의 하늘과 비행 현실로 인도 한 것이다.

인류에게 하늘 이란 어떤 의미일까? 무심코 쳐다보는 하늘은 그저 막연함이고 파란색으로 때로는 회색으로 채색되어 비와 눈을 만들어 내는 한없이 큰 공간일 뿐이다. 그러한 하늘을 보며 사람들은 희망과 소망을 얘기하고 죄와 벌을 얘기한다. 별과 달을 담고 있는 밤의 하늘은 꿈이고 전설이고 영험(靈驗)하고 신비한 공간으로 존재해왔다. 하늘은 때로 재앙과 벌의 진원지로 인류의 운명을 이끄는 거스를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영감과 예지력은 오래전부터 하늘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었고 도전보다는 그의 순리에 따르고 수긍하며 조아리는 지혜를 인간에게 알게 하여 친화하고 숭배하여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했다. 따라서 천둥과 폭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와 오만함에 대한 경고이고, 파란 하늘은 불확실한 삶을 기대는 희망이었으며, 밤하늘의 달과 별은 인류를 꿈꾸게 하여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담고 있는 이야기로 인간사 속에서 탄생하고 각색되어왔다.

이렇게 하늘은 인간의 어디에도 항상 존재해왔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을 찾고자 하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알 수 없는 실재이며 허구와 같이 존재해왔다. 그러면서 하늘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잣대로 요구하는 엄정한 가르침이고 희망을 주는 가능성이고 막연하고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의 상징이었다.

새들이 있었기에 인간은 나는 것을 꿈꾸어 왔는지 모르겠다. 단지 상상과 예지만으로 하늘을 난다는 사실이 인간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어왔다는 것을 믿기에는 너무 많은 논리와 상상의 비약이 요구된다. 주변의 사물로부터 모방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다른 형태의 상상은 가능할 수 있으나 아무런 사유와 상상의 근본이 없이 실체와 개념이 없는 어떤 것이 사람들의 의식으로 파고들어 와 구체화할 수 있다는 일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의식 속에 담아있지 않은 얼마나 많은 다른 가능성이 인간의 상상력을 기다리고 있을까(?)의 생각에 이르게 되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와 독수리의 비상을 보면서 원시인들은 산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꿈을 꾸었을 것이고 자신들과 유사한 어떠한 삶의 연장을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꿈과 소망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유지되었으며 상상 속에서 숙성하여 인간이 난다는 추론으로 발전이 되지 않았을까. 수천 년간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었던 하늘에 대한 불경스러운 인간의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그들만의 합리적인 사고로 상상조차도 포기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지(?)

아무튼 상상이 비행의 첫 시발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복되는 상상은 세상에 날고 있는 것에 호기심으로 발전을 했을 것이고 그것들을 포획하여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시도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지능은 호기심과 결합하여 상상 속에 존재했던 아이디어를 새의 나는 모습들을 관찰하게 했을 것이고 개념화하고 그것을 펼쳐보려는 시도들로 발전하게 됐을 것이라고 추론해본다.

복잡하고 세밀한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는 과학의 집합체인 비행기가 상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산발적이고 비논리적인 상상을 논리적 회로 속으로 정렬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파행과 오류를 통과해야 했을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라이트형제와 항공의 길을 오늘날로 이끌었던 수많은 호사가와 탐구가들이 세계의 많은 다른 키티호크에서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았으면 하늘을 난다는 것은 아직도 상속에서만 남아 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들이 했던 조금만 몸짓과 날갯짓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낀다.

“우리 대에는 어렵겠지만 인류는 분명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라이트형제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무인 조종이 회자된 지 오래고, 최근에는 로봇 부기장이 비행하고 착륙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항공은 다음에 어디로 비상을 할 것인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어찌 됐든 비행은, 난다는 것은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의 태동은 인간의 상상이었고 키티호크의 작은 날갯짓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항공의 모습은 키티호크에서 시작된 나비효과와 같은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