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지연운항 원인이 되었던 오인
운항 지연의 대부분은 출발공항 또는 목적지 공항의 기상이나 비행 준비중에 발견되는 크고 작은 결함등에 기인한다. 그밖의 안전에 관련된 이유나 항로의 혼잡으로 지연이 야기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 지연 사유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 승객의 안전이 의심되면 비행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연 사유가 어처구니없어 실소를 일으키는 일도 있다. 하지만 운항 지연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재촉과 운항 지연에 대한 비난은 안전을 양보하고 타협하는 구실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래전 인천 공항출발 LA행 비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깔끔하게 청소되고 결함 하나 없이 정비된 항공기를 맞이하면 기분이 좋다. 항공기 도착 전에 운항실에서는 이십여 명의 객실 요원들과 두셋트의 조종사들 즉, 기장 2명 부기장 2명이 다 같이 모여 각자의 임무에 대한 설명과 운항에 대한 세세한 브리핑 즉 기상, 비행시간, 비행 루트, 항공기의 흔들림이 예상되는 항로 지역과 근무요령 등을 나누며 대면 시간이 있었다. 기장과 부기장은 각각 외부점검과 내부 비행 컴퓨터를 세트업 하는 일련의 업무로 바쁘게 움직였다. 위층(Upper Deck)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B747-400의 조종석은 항상 포근하고 편안하다. 특히 아직 차갑게 느껴지는 2월의 날씨와 계속되는 눈발은 조종석(cockpit)을 더욱 아늑하게 느껴지게했다. 승객 탑승하고 이륙 브리핑을 마치고 출발 허가받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계속 내리는 눈발이 마음에 걸렸다. 2월에 내리는 눈이 이렇게 많은 양으로 지속될 줄은 예상을 못 했고 결국 우리는 항공기 상면에 쌓인 눈을 제거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다. 날개와 동체에 쌓인 눈은 비행기를 공중으로 부양시키는 데 있어 커다란 장애물이다. 비행기를 앞으로 추진시키는 힘은 엔진에서 비롯되고, 그 힘으로 얻어진 속도로 비행기 날개에 가해지는 상대 풍은 비행기를 공중으로 부양시키는 양력(Lift force)을 발생시킨다. 즉 속도에 의해 생성된 강한 바람이 날개의 상면과 하면을 통과 하게되고 날개는 다시 상하면의 곡면의 차이로 인해 강한 압력 차이가 발생하며 이 날개 상하면의 압력 차이가 비행기를 뜨게 하는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상면에 쌓인 눈과 결빙 또는 이물질은 날개 상면의 공기흐름을 방해하고 이탈시켜 충분한 날개 상하면의 압력 차이 즉 양력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따라서 이륙 전에 반드시 날개에 쌓인 눈과 결빙은 제거되어야 한다.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많은 항공기들이 항공기 표면에 쌓인 눈을 제거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는 사실을 레디오 교신을 통해 알수 있었다. 순서에 의해 Deicing Pad(눈또는 결빙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마련된 공항 내의 일정한 시설)로 진입하기 위해 교신했다. Deicing이란 항공기 표면에 쌓인 눈이나 결빙 또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4계절 중 겨울이 있는 지역의 중요 공항은 Deicing Pad를 공항 내 일정 지역에 설치해놓고 있다. Deicing Pad까지 이동하기 위한 허락(Clearence)을 얻어야 하는 절차와 그곳에 가서도 항공기 표면을 화학물질로 씻어내야 하는 절차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이미 많은 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다. 지연에 대한 승객들의 이해는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항공 및 객실 승무원을 포함한 다른 항공사 직원들에게는 항공기 지연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승객들의 편의를 살펴야 하는 시간이다.
제설 및 결빙제거 작업이 끝나갈 즈음에 객실 사무장이 급히 달려왔다. 그는 한 승객이 항공기 창문의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 알려왔다고 했다. 사무장은 본인이 직접 맨눈으로 확인했는데 아이들 손톱만 한 구멍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부기장에게 직접 가서 확인 할 것을 부탁했고 부기장 역시 확인 후 작은 구멍이 확실하다고 보고했다. 정비사가 도착하여 자세한 점검이 이루어졌다. 두 명의 정비사는 작은 구멍에 대해 이전의 모든 사람의 의견과 같았다. 우선 Deicing Pad를 사용하기 위해 기다리는 다른 항공기를 위해 장소를 옮겨 탑승구를 지정받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거듭되는 지연에 대해 승객 방송을 통하여 이해를 구했고 객실은 객실대로 칵핏은 칵핏대로 지연에 대한 조치와 절차를 이행하기에 분주했다. 객실에서는 음료 서비스를 비롯해 승객들의 불편 상황 확인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승객들은 차분하게 기다려주었다.
두세 가지의 시나리오를 가상하여 운항본부와 관계부서와 같이 절차와 대책을 상의 했다. 다른 항공기로의 대체는 여유 항공기가 없었기 때문에 불가능했으며, 일단 일정 시간내에 정비가 완료되기를 바라며 해당 창문을 뜯어내고 교체작업 계속 진행했다. 운항본부에서는 일정 시간 내에 작업이 되지 않으면 법적 근무시간 초과 문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대기 승무원들의 호출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승객들의 하기 및 호텔 투숙과 배상 문제까지 고려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참 후 조종실로 올라온 정비사의 표정이 묘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의 얼굴은 실망 반 기쁨 반 분간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확인하고 작은 구명으로 판단했던 실체는 이중 유리판 사이에 형성된 습도에 의한 물방울로 확인이 되었다. 어떻게 물방울을 작은 구멍으로 오인이 가능하단 말인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안전에 관련된 사안이었고 모든 사람은 할 일을 했다는데에 동의가 이루어졌다. 설령 잘못된 판단이었다 할지라도 안전을 지키려고 절차에 충실한 사람들의 성실성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나 자신도 직접 확인했지만, 그것은 물방울이 아니고 작게 형성된 구멍이었다. 괜찮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무시하고 진행했다면 기장으로서 나는 떳떳했겠는가 생각해보았다. 안전을 위해 겪어야 할 한 과정이었다. 모든 사람의 신속한 참여에 내가 속한 회사의 안전에 대한 의식에 대해 오히려 뿌듯함을 느꼈다.
다섯 시간 이상의 시간이 지연되어 이륙을 하게 되었다. 원래 이 시간이면 벌써 일본 영해를 지나 알라스카 앵커리지를 향해 태평양 어는 지점을 날고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순항고도에 이르고 동해와 독도 상공을 지나 일본 영공으로 진입할 즈음 사무장에게 연락이 왔다. 창문의 구멍을 처음 발견한 승객이 미안해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총에 당황하며 쓸데없는 짓을 해서 지연을 일으켰다는 식의 주변 승객들의 반응에 어떠할 바를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승객들은 노골적으로 지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여러 번의 승객 방송했지만, 해당 승객을 위해 다시 방송했다. 항공 발전을 위해서 오히려 이러한 분들이 필요하다.
“ 승객여러분 기장입니다. 많은 시간이 지연된 점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넓은 양해와 이해 부탁드립니다. 운항에 있어 항공기의 안전은 재고의 여지가 없이 살펴야 할 첫 번째 덕목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의 지연운행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여러분들의 인내와 참아주신 덕분으로 이렇게 이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문제를 처음 발견하고 말씀을 해주신 해당 승객분, 정말 감사 드립니다. 지나칠 수 있었던 문제를 발견하고 가벼이 여기지 않고, 용기 있게 제기해주신 당신은 오늘의 최고 승객입니다. 감사합니다.”
방송이 나간 후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는 사무장의 보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