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날다

7. 나의 첫 인도비행

by 최성길


나마스테(Namaste, 안녕하세요)! 대양 너머에 있는 인도 관제사의 목소리가 교신 전파를 타고 들려온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한 항공기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말레이 반도동쪽 해안을 지나 기수를 북서쪽으로 유지하고 두 시간을 비행하면 어느새 광활한 인도양의 언저리에 와있음을 느낀다. 인도식 인사말과 독특한 영어 발음은 카레 향보다 짙게 그들만의 색깔로 다가온다. 인도양의 어둠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별들은 인구만큼이나 많은 자신의 꿈과 소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학창 시절 책과 영화 속에서만 경험했던 인도는 간디와 타지마할, 카스트제도와 많은 인구, 요가와 종교 그리고 갠지스 강 주변의 무거운 의식을 진행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 등 색채 짙은 인도만의 향을 가지고 있었다. 흰색 옷을 즐겨 입던 인도인들에게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선조들과의 유사성이 있는 듯 느꼈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일본식 카레를 좋아했던 나는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막연한 동질성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었다.


비행을 하며 내가 처음 인도의 체취를 경험한 것은 체나이(Chenai) 공항에서였다. 함께 달려온 육중한 B747-400 화물 비행기의 엔진을 끄고 트랩을 내려오니 낡은 지프형 자동차와 함께 세 명의 젊은이들이 우리를 맞았다. 살래살래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며 멋쩍은 미소를 띠면서 후덥지근한 칠월의 더위 속에 주저하지 않고 무거운 오버나이트 백을 번쩍 들어, 차 속으로 던져넣었다.

지금의 현대식 터미널이 아닌 아직 낮은 천장의 구식 건물에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고 그들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천장에 일렬로 매달려있는 선풍기들은 열심히 돌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가방을 밀며 터미널 건물 밖으로 나올 때 수많은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철제 칸막이를 따라 부모·자식과 친지 및 이국에서 오는 사업관계의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 피켓과 쪽지를 들고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는 인디언 블랙의 수많은 사람의 눈초리는 연신 지나치는 사람들을 쫓고 있었다.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기온 속에서 엉키듯 모여있는 그들의 눈동자들은 돌연 일제히 그들과 다른 이방인의 모습을 쫓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호텔 차량 쪽으로 발을 옮길 때마다 그들은 길을 내어주며 멋쩍은 웃음으로 외부인의 방문을 환영해 주었다. 그들의 미소를 보고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되어 있지 않고 어수선한 느낌과 여기저기서 울리는 자동차 경적 사이로 꽃을 팔거나 구걸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절대 동전을 건네지 말라는 동료들의 말이 떠올랐다.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쫓아다니는 맨발을 한 아이들의 눈초리는 한없이 맑았지만, 웃음기 없는 그들의 요구는 집요했다. 아이들을 뿌리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혼자 서있는 아이에게 슬쩍 적은 액수의 지폐를 건넸다. 그리고는 순식간이었다. 갑자기 모여든 수많은 아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얼른 차 안으로 몸을 옮겼으나 그들은 한동안 차창에 그렇게 매달려 있었다. 이상하고 무거운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어느덧 자동차는 움직였다. 그 후 이 이상한 상념은 인도에 갈 때마다 부딪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고, 나의 마음도 점차 그에 익숙됨을 느꼈다. 인간의 사고와 정신의 유연성은 최선이든 최악이든 지속해서 노출되면 익숙하게 만들고 그에 순응하게 만든다. 대비되는 현실과 비교하고 깨우치려는 노력이 없는 한, 선도 악도 결국 사람들의 또 다른 삶의 방편으로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차선이 없는 도로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울리는 경적, 중앙선을 넘나드는 차들의 행렬, 이따금 복잡한 차량 사이로 오후의 산책을 즐기는 도로 위의 한가로운 소들과 그렇게 울려대던 경적도 멈추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이상한 관용, 샨티 촌 천막들과 맨발로 다니며 끊임없이 손을 벌리는 아이들, 나는 무엇인가 감전이 된 듯 한참이나 바깥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거운 마그마의 흐름처럼 차들은 흐르고 나는 호텔에 도착했다.


장거리 비행의 피곤함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의 도취에서 깬 것은 터번을 쓴 호텔 급사가 차 문을 열어준 호텔 로비에서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오버나이트 가방을 풀어 정리한 후, 여느 때처럼 부기장과 함께 제대로 인도의 향취를 경험했다. 이방인이 경험하는 인도의 음식은 우리나라 음식을 처음 맞는 외국인의 느낌과 같이 생경하다고나 할까? 향과 맛과 색감이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인도인들의 정체감이 스며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대할 때는 멈칫멈칫 자유스럽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경함은 호기심으로 발전하고 지금은 마니아가 되었다.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 많은 인도의 목적지 중 한 곳 정도는 비행하였고 인도의 문화와 더불어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뷔페로 주어지는 아침 식사에는 도사이(Dosai)와 바다이(Vadai) 그리고 하얀 빵과 같은 이들리(Idly)가 빠지지 않고 저녁엔 부기장과 같이 치킨이나 머튼 그레비(Gravy)종류와 치킨 탄도리를 시켜 마늘이나 버터 또는 치즈 향이 깃든 난(Naan) 에 올려서 먹거나 브리아니(Briny)를 시켜 넓은 접시에 같이 섞어서 먹기도 한다. 기다란 파인글라스에 제공되는 시원한 인도 맥주는 긴 여행에서 쌓인 피곤함을 시원하게 잊게 해준다.

보통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는 체류 동안에 많은 것을 보고 마음에 간직하려고 노력했었다. 체나이의 긴 해변, 뱅갈로의 테레사 수녀가 시무했던 장소, 뭄바이 간디 박물관 그리고 뉴델리의 시장, 라크노의 유명한 식당 등을 찾아 주로 인도의 주요 교통수단인 삼발이 툭툭을 타고 이곳저곳을 헤매며 사람들을 느끼고 그들의 일상을 경험했었다. 어느 장소를 가던 배타적이지 않고 그들과 다른 부분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도 반겨주는 인도인들의 정서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향과 맛이 있듯이 인도의 어느 곳을 가든지 비슷하게 갖게 하는 이미지와 느낌이 있다. 굵은 눈꺼풀과 까만 피부에 타협적이고 순한 사람들, 합리적이고 논리에 밝아 타국에서도 법과 의학 IT 영역에 강한 사람들, 전통을 중시하고 자신들의 가치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 하지만 아직도 카스트제도의 유령에 메여 계급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는 악습이 남아 있는 사회와 심한 빈부격차를 용인하며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 어찌 보면 과거의 모습을 떨쳐버리고 근대적이고 화려한 것에만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성향보다는 돌다리 몇 개 건너듯이 왔다 갔다 하며, 과거와 현재를 같이 공유하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 인도는 많은 인구만큼이나 복잡한 이상과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변하지 않고 흐르는 거대한 강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어떻게 감히 인도에 대한 경험을 옮기겠는가. 그들의 방대한 역사와 철학 다양한 문화와 종교 그리고 그들 삶의 어느 한 단면이라도 옮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조종사로서 인도의 여러 목적지를 비행하면서 마주친 개인적인 피상의 조각들을 하루의 일기처럼 끄적여 본다. 낯선 풍경과 익숙지 않은 향과 내음 그것에 어울려 사는 사람들. 조종사는 이질적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면서 다른 이해와 삶의 방식 그리고 정서의 다양성을 경험하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직업이다. 인도양의 수많은 별들과 인도 사람들의 꿈과 염원을 일기장에 옮길 수 있도록 여행을 할 수 직업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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