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의 첫 솔로비행
제주의 바람은 갈대만큼이나 종을 잡지 못하고 싱숭생숭하게 불어댔다. 새내기 조종사들에게 오월의 신록과 푸른 하늘은 그다지 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멀리 보이는 활주로는 오늘따라 더욱 그 끝이 아득하게 보이고 유일하게 우뚝 솟아있는 타워 건물은 계절의 생명력과 활기에 무색하게 무뚝뚝하게 서 있다. 사방이 초록의 평원으로 둘러싸인 팔백 고지의 한라산은 평온했고 정석 비행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푸른 초지 위로 하늘의 파란색이 번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서 있는 둥근 지붕의 싸일로(Silo)와 한우와 유럽산 젖소들이 뒤섞여 있는 제동 목장은 한가로이 아침을 맞고 있다.
오늘따라 교관 회의가 길어지고 램프 한곳에 몰려있는 위아래 주황색 한 벌 차림의 훈련복을 입은 젊은 군상들은 애써 태연한 척 마른 농담을 주고받지만, 마음은 편치 않게 술렁거리고 있음을 서로 알고 있었다.
이윽고 파이프를 물고 계신 노 교관님이 램프 저만치 나가서 하늘을 살피고 바람을 가늠해 보신다. 6.25 참전의 기록까지 하고 계시고 산전수전 다 겪으신 베테랑 노 조종사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근엄하시다. 흰머리와 굵게 패인 주름살은 외곬의 길을 지켜온 노병의 비행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듯 하다. 새파랗게 젊은 청춘들에 자신이 수십년간 담아온 것을 쏟아 내는 일은 이제 수월치 않으신 모양이었다. 안타까움에 혀를 차고 소래기도 질러보는 환갑이 지나신 베테랑 대선배는 피곤함으로 가득하지만 열정은 아직도 쩌렁쩌렁하고 어색한 미소에는 새내기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둥지에서 내보내 홀로서는 연습을 시키려는 노 교관은 다시 본능적으로 승부사의 진지함이 배어 나온다.
정비사들의 손에 이끌려 우리의 애마 Piper Arrow 단발 프로펠러 비행기들은 한 대씩 램프로 나오고 동료들은 웃음기를 물리고 진지한 얼굴로 변했다. 얼마나 많은 긴장과 땀과 시간을 쏟아 부었나. 처음 훈련 비행기에 몸을 담았을 때부터 그 이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정신없이 올라탄 프로펠러 단발비행기를 제주의 어느 바다 상공으로 끌고 올라간 교관님은 우리의 혼을 쏙 빼놓았다. 칼칼한 목소리에 익숙지 않았던 아래위 한 벌의 국방색 비행복을 입은 교관은 웃음기를 쪽 빼고 근엄하게 여러 가지 기동을 선보여 주었었다. 비행기는 갑자기 사십오도의 경사가 들어가고 무의식으로 앞좌석의 언저리를 꽉 주었던 생각이 난다. 기대어 있던 몸의 수직 아래로 시퍼런 파도가 일렁이고 비행기는 급경사로 선회하며 금방이라도 바다로 떨어질 것 같았었다. 기수를 번쩍 들었다가 다시 바다로 향하듯 급강하하고 다시 급선회와 급상승의 기동을 반복했고 나와 같이한 동료는 반쯤 정신을 놓고 말았었다. 현기증으로 가득했던 첫 비행 이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우도에서부터 표선 해주욕장, 서귀포등 제주 바다 상공 이곳저곳의 공역에서 수없이 기동 연습을 했다. “고도, 속도, Pitch, Bank, Power” 교관은 끊임없이 지적했고 우리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소화하며 생소한 개념의 숙지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기동 연습을 마치고 제동 활주로로 귀환하는 길에는 언제나 뉫엇뉘엇 한낮의 기세를 내려놓았던 저녁 햇살이 부드럽게 맞이했었다. 우도, 표선 서귀포 바닷가의 상공에서 바다와 하늘을 기준 삼아 기동하다가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긴장감에서 해방되어 허전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바람에 따라 활주로 32/14방향이 결정되고 조종간이 손에 익을 때쯤 어느 정도의 여유 있는 비행을 할 수 있을 때쯤 날고 있는 우리 자신에 얼마나 신기했었던지(?) 삼군부리 상공을 지나고 여기저기 작은 민둥산 같은 오름을 지나 활주로로 귀환하면서 매번 제주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홀딱 빼앗겼었다.
솔로 비행에 임할 대상자가 호명되고 당사자들은 하나씩 교관들의 브리핑을 받았다. 나의 순서가 되었고 교관님은 별다른 브리평없이 평소 하던 대로 하라는 말과 함께 나의 등을 떠밀었다. 가벼운 불안감과 떨림이 온몸을 감쌈을 느꼈고 그때마다 어머님이 해주셨던 기도를 떠올렸다. 외부점검을 하면서 “침착하자. 할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비행기에 올라 정비사의 신호에 따라 시동을 걸고 서서히 램프(Ramp)를 떠나 타워의 지시를 기다렸다. 바람 방향에 따라 활주로 32(Runway 32)를 사용하고 있었다. 활주로로 진입하면서 Left Side Clear, Right Side Clear(좌선회 이상없음 우선회 이상없음)을 주문처럼 독백하고 활주로로 향했다. 필요한 점검과 엔진 점검을 마치고 비행기를 활주로에 정대했다. “Runway32”라는 활주로 번호와 표식이 선명했고, 활주로 중심선이 까마득히 멀리까지 반듯하게 뻗어있었다. “Piper Arrow123, Ready for Take-off” 이륙을 요청했고 관제사는 바람 방향과 현재 대기압과 함께 이륙을 허락했다. 파워(Power)를 서서히 밀어 넣었고 비행기는 떨리듯 미끄러져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를 확인하고 결심속도(V1 speed)를 지나 기수를 당기었다. 비행기는 어느덧 지면을 이탈하여 솟구치고 있었다. 활주로 중심선이 아래로 사라져가고 나의 앞에는 다른 세상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다. 랜딩기어를 올리고 계속 상승했다. 공항 장주의 비행 패턴을 그리며 선회를 시작했다. 활주로와 평행하게 반대로 향하는 위치(Downwind Leg)에 와 있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뒷좌석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우주와도 맞닿아 있는 한라산의 어느 공간을 혼자서 비행하고 있었다. 이는 내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훗날 내가 되고자 하는 에어라인 조종사가 되어 세계 곳곳을 누빌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희열과 열정이 온몸을 감쌈을 느꼈다. 이제 나의 인생의 항로를 향해 이륙했음을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내 인생의 항로는 방금 이륙한 활주로처럼 반듯하고 탄탄대로 아닐 것이라는 것 그리고 끊임없는 날갯짓이 요구될 것이라는 생각이 묵직하게 다가옴을 느꼈다. “Piper Arrow 123 Report Base” 잠시의 흥분에서 관제사는 내가 솔로 비행임을 상기시켜주었다. 활주로와의 폭을 적정하게 유지하고 어떻게 내릴 것인지를 머릿속에 그렸다. 왼쪽 어깨 뒤로 멀리서 적절하게 활주로와의 각이 형성되고 선회하면서 서서히 강하를 시작했다. 마음을 다시 차분하게 다스리기 시작했다. 활주로와 거리를 확인하며 고도를 계산하고 속도를 유지했다. 기류가 어느 때 보다 좋아서 첫 솔로 비행을 돕고 있었다. 마지막 레그(Leg)로 선회하면서 활주로와 정대를 했다. 선명한 활주로 표식을 확인하고 서서히 강하했다. 멀리 있는 세상은 나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활주로는 나의 목표가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지면과 가까워져 옴을 느끼면서 활주로 끝을 쳐다보았다. 가시 안(peripheral vision)으로 느껴지는 침하를 조금씩 줄이면서 속도는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잡아 속도를 줄였다. 안도감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램프로 들어오는 길이 어느 때보다 뿌듯했다. 동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고 멀리 행거 옆쪽으로 노 교관님이 눈에 띄었다. 감사함에 명치끝이 찡하게 느껴왔다. 장황한 말보다 짧은 몇만대로 의사를 표시하시는 원칙주의자이신 교관님에게 비행기는 숭배의 대상처럼 보인다. “어허 하늘에 오르기 전에 비행기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거 아닌데” “비행기는 순하게 다스려야지 억지로 몰아대면 안 되지” 신앙처럼 박혀있는 믿음에 작은 이야기도 흘리지 않고 비행기 앞에서 결코 경솔한 언사를 내놓지 않는 그의 마음을 인제야 겨우 조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오랜 경력에 견주어 프로펠러 비행기는 이제 가볍게 다룰 법도 한데 그에게 비행기는 다 똑같이 정성과 진정으로 다루어야 할 생물과도 같이 생각하고 있는듯하다.
엔진 시동을 끄고 함박웃음으로 비행기를 나섰다. 주변에서 동기들과 다른 동료들이 손뼉을 치고 브리핑룸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갑자기 물세례를 받았다. 이곳저곳에서 환호하며 물세례로서 환영해 주었다. 뺨에 그리고 온몸으로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줄기가 환호와 기쁜 전율이 되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