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나의 세계

마태복음 12장

by 신완식

일자: 2024년 12월 12일(목)

제목: 젊은이 예수님

본문: 마태복음 12장 1~8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 밖에는 먹지 못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표준새번역, 3~4절)

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네요.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형된 속어이다.’


꼰대! 느낌 자체가 벌써 부정적으로 생각되지 않으세요? 뭔가 융통성이 없고 대화와 타협이 어려운 사람. 물론 나이가 많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후세에 속한 이들에게 그렇게 몰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어쩔 수 없이 꼰대세대가 되었네요. 대단히 슬프고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세월이 자꾸 흐르는데요.


사실 저도 꼰대에만 머물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 중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저보다 4~5년 선배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제게 그분들이 꼰대 같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역으로 보보다 수년씩이나 후배가 된 이들은 저를 영락없이 꼰대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착각을 하고 삽니다. 어제 80대 초반의 어느 권사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목사님! 저도 마음은 청춘인데 벌써 나이가 이렇게 돼버렸네요.”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는 권사님 모습을 뵈니 그것은 다름 아닌 저의 미래 같았습니다. 저도 한 20년 지나면 바로 그 자리에 있게 될 테니까요.


사실 저는 제가 벌써 꼰대 세대가 됐다는 점을 그리 절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마음은 늘 청춘이어서 젊은이들과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리라 착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난주부터 크게 놀라고 있습니다.


육군참모총장. 제가 육군 대위 계급장을 달고 군종목사로 있을 때 총장은 그야말로 하늘 같았습니다. 육군 대장 곧 별이 네 개인 데다 나이도 저보다 20세 정도 많았을 테니까요. 그러다 이번에 보니 계엄사령관 겸 육참총장을 지낸 이가 저보다 서너 살가량 어리더군요. 학번도 저보다 3년 후배이고요. 세상에!


제가 2년간 근무했던 제9공수특전여단장은 더하네요. 현재 지휘관의 계급은 준장입니다. 역시 그 시절 지휘관은 제게 나이로나 계급으로나 넘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지금 지휘관은 저보다 무려 10년이나 아래입니다. 그러니 중대장이나 대대장은 이제 귀엽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겠군요.


나이가 들어가도 생각은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래야 꼰대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까요. 무엇보다도 융통성이 있어야겠지요. 생각이 고루하지 않고 열려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상황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고요. 사람을 대할 때 어떤 규칙이나 법칙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사람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사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젊어도 인간의 존재자체를 가볍게 여긴다든지 생각이 고루하다면 젊은 꼰대가 되고 말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청년이셨네요. 나이가 젊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중심에 놓으셨습니다. 사람을 위한 율법, 사람을 위한 제도, 사람을 위한 권력, 사람을 위한 재물, 사람을 위한 지식.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청춘이지요.



일자: 2024년 12월 13일(금)

제목: 얼마나 힘이 들까요?

본문: 마태복음 12장 9~14절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그럴 때에 그 양을 끌어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라도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공동번역 개정판, 11~12절)

이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치유한 일 때문입니다. 그것도 안식일에요. 한쪽 손은 어느 손을 말할까요? 네, 오늘 본문과 동일한 이야기를 다르고 있는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오른손입니다. 그리고 그 손이 마비되었던 사람의 직업은 석공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석공에게 오른손은 생명 손입니다. 위험한 채석장에서 그 손으로 일을 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렸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계셨더라면 그 손을 움직여 공양해 드렸겠지요.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면 바로 그 오른손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렸을 것입니다. 혹시 미혼이었다면 그 손으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장가갈 밑천을 준비했겠지요. 아무튼 그 사람에게 오른손은 생명의 손이요 운명의 손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도무지 오른손을 쓸 수 없는 남자! 끝.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는 심한 좌절과 절망에 빠졌을 것입니다. 하늘이 나를 버렸나? 내 운명은 왜 이래? 이제 우리 식구들은 누가 먹여 살리나?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와 어린아이들은 이제 어떡하라고?


제가 런던에서 유학 중일 때 아이들이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우선 얼마나 먹어대는지 엄청난 양의 밥을 먹은 후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뭐 좀 먹을 것 없어요?” 아! 이런 공룡 같은 녀석들이라고. 두 아이들이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도 그때 저렇게 먹어치웠나?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생각할 수 있겠더군요. 내 부모 형제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그렇게 아이들 덩치가 점점 커지기 시작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제가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습니다. 새벽 아르바이트와 저녁 아르바이트를 한참 병행하고 있었는데 허리가 무너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걷기도 어렵고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은 더욱 힘들고. 그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주저앉으면 어떻게 애들을 먹여 살리지? 아내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한데. 내가 움직이지 못하면 두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어버릴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쉴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주님 제 뼈가 부러져도 좋습니다. 저는 쉴 수가 없습니다. 이역만리 런던에 와서 빌어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죽을힘을 다 내어 일을 할 테니 제 허리를 좀 고쳐주세요. 그때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성도들을 보면 그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몇 년 간 잠시 한 일이지만 직업적으로 일하는 분들은 얼마나 고달프고 마음이 졸일까? 혹여 다치지 않을까? 심하게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면 얼마나 괴로울까? 가장의 몸이 불편하거나 다쳤을 경우 식구들이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은 얼마나 많고 고통스러울까?


마치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양 같은 존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일자: 2024년 12월 14일(토)

제목: 솔직히 걱정이 많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2장 15~21절

“그는 이방인들에게 정의를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소리도 내지 않으리니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자 없으리라.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드디어 그는 정의를 승리로 이끌어 가리니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공동번역 개정판, 18b~21a)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깊이 묵상해 보면 가슴이 설레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희망이 되고 기대가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이라. 오늘로 치면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희망을 걸 것이다. 어떻게요? 눈에 보이지도 않으시고 우리 귀에 들리게도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희망을 걸 수 있을까요?


저는 최근 들어 한국교회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여기 이렇게 글이라도 쓰면서 제 마음을 표현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전 국민의 80% 가까이 되는 분들이 윤석열 씨의 탄핵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 매일 저녁마다 수 만 명 또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서 탄핵을 외치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11시가 가까운 시간까지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던 것 같습니다.


탄핵 주장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지난 3일에 있었던 비상계엄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신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어제 만난 여러 명의 목회자들도 군인들이 어떻게 계엄에 실패할 수 있느냐, 다 쓸어버렸어야지, 장군들이 뭐 하냐는 식으로 계엄실패에 대해 통탄해했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세상에! 계엄이 어떤 것인데 목회자들이 그것을 지지를 하다니요.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얼마 전 국가조찬기도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윤석열 씨도 참석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얼마 전인 11월 22일이었습니다. 기도회 영상을 보니 계엄을 주도한 인물들도 보이고 이후 지지를 보이고 있는 이들도 나오더군요. 설교자는 윤 씨에 대하여 칭찬하는 장면도 연출한 것 같습니다.


아! 저는 오래전부터 이 국가조찬기도회를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독재자들을 정당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아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하고요. 독재자들을 찬양하고 반란자들을 위해 축복하는 모임을 보는 MZ 세대 젊은이들은 차디찬 바닥에 앉아 탄핵을 외치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교회를 신뢰할까요? 목회자들을 존경하게 될까요?


이번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군사반란을 지켜본 젊은이들은 앞으로 죽는 날까지 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될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독재와 군사반란을 주도한 이들이 몸담은 교회와 그들을 지지하고 축복하는 교회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1970년대와 80년대 기독교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커다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다 그랬다는 것은 아닙니다.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곁을 내주는 역할을 많이 감당했으니까요.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수구적인 우파가 된 교회는 갈수록 저 같은 이름 없는 이들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일자: 2024년 12월 16일(월)

제목: 다시 만난 나의 세계

본문: 마태복음 12장 22~29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왔다. 사람이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 어떻게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있느냐?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 것이다.”(표준새번역, 28~29절)

12월 3일은 우리 역사에서 또 하나의 어둡고 어이없는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12월 14일로 인하여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맞이했습니다.


12월 3일이 지나자 영국에서 지인들 몇 분이 안부를 물어오셨습니다. 워낙 빠른 세상인지라 런던에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가 된 모양입니다. 제게는 스승과도 같으신 마틴 캠룩 목사님께서도 걱정 서린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내셨더군요. 벌써 은퇴하셔서 이제는 연세가 77나 되셨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은 졸업하신 수제이신데 은퇴하신 후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지요.


14일이 지난 후 제가 보낸 이메일에 답을 해주셨는데 그중 일부를 챗GPT의 도움을 받아 번역했습니다. 다음은 그중 일부 내용입니다.


‘네, 한국에서 일어난 매우 고무적인 사건들이 이곳에서도 널리 보도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가디언에서 주요 기사로 다루더군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용기 있게 일어난 모습을 보니 정말 좋습니다. 헌법재판소에 새로운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고 들었고, 물론 문제들이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끔찍했던 쿠데타 시도 이후 이렇게 대응한 것은 한국 국민들에게 정말 큰 찬사입니다.’


번역이 조금 어색한 대목이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영국에서 보도된 탄핵 소식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로 시청하니 다들 많이 놀라는 것 같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군사반란의 성격을 띤 계엄령을 이리도 짧은 시간 안에 그것도 대단히 평화적이고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끝내버렸다는 사실 말입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접한 노래가 있습니다. 소녀시대라는 걸 그룹이 2007년에 처음 발표를 한 ‘다시 만난 세계’라는 곡입니다. 이것이 데뷔곡이라더군요. 그때 저희 식구들은 모두 영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습니다. 물론 소녀시대라는 그룹은 이름 정도만 알았습니다. 멤버들 대부분이 제 두 아들들과 나이가 비슷해서 흥미로웠거든요. 이번 탄핵 시위 중에 자주 불린 노래인데 그 가사 중에 제 마음에 크게 다가오고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 슬픔 이젠 안녕 /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 다시 만난 나의 세계’


특히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지난 1주일 동안 대략 10회 이상은 들어본 것 같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 청년들도 안무를 따라한 영상을 유튜브에 많이 올렸더군요. 확실히 소녀시대의 율동이 자연스럽고 좋은 것 같습니다. K팝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습니다.


거의 폭군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한 사람이 마침내 탄핵을 당하여 권력을 쓸 수 없게 되니 나라 전체가 평안해졌습니다. 제 마음도 평안합니다. 다시 한번 지도자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저의 20대 청춘시절에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군사독재의 망령을 40년이나 지나 다시 겪을 뻔해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참 많이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는 정말 신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세워주소서. 아멘.



일자: 2024년 12월 17일(화)

제목: 사람 참 잘 안 바뀝니다

본문: 마태복음 12장 30~37절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낸다.”(표준 새 번역, 33~35절)

‘그땐 그럴 줄 몰랐어요. 알았다면 찍었겠어요? 그때는 그가 정말 소신 있고 강직한 사람인 줄 알았지요. 그에게 나라를 맡기면 달라질 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실망입니다.’ 제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제법 계시더군요. 그분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저는 몇 해 전부터 전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만 말입니다.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잘 안 변한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보니까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약속한 시간에 거의 늦는 법이 없습니다. 뭔가를 잊어버리는 일도 흔치 않고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역시 군목 출신이라 다르신 것 같습니다.’ 틀렸습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툭하면 지각해서 자주 지적을 받곤 하던 군종목사님들이 더러 계셨습니다. 약속한 것을 쉽게 잊어버린 분들도 있었고요. 그분들 때문에 단체로 분위기가 썰렁해진 일도 있었고요.


저는 초중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단 한 차례도 지각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전학을 하는 과정에 서류가 제 때 넘어오지 않아 부득불 빠진 일 외에 결석은 꼭 하루만 했습니다. 12년 동안 단 하루 결석한 것이지요. 과식으로 배탈이 나서 부득불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시간과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군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제 성격 때문입니다. 핸드폰 캘린더에 약속을 저장해 둘 뿐만 아니라 책상 달력과 화이트보드 월중 계획표에도 메모를 해놓기 때문에 잊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습관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제 아내 고등학교 친구 한 사람은 제시간에 오는 법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말입니다. 저도 결혼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만 아내는 늘 그 친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30분 내지 한 시간 정도 늦는 것은 불변의 법칙 같다고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약속을 해서 내년 1월 중에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는데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설마 지금도 늦을까요? 내년이면 아내 친구들도 대부분 환갑인데요.


어렸을 때 이기적이었던 사람들은 커서도 그런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고집불통도 그렇고요. 이해심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성품이 어디 갑자기 생기는 것일까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때 덜렁댔던 사람은 커서도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잖습니까? ‘야! 너, 하나도 안 변했네.’ 이것이 어디 외모에 대해서만 그런 걸까요? 그 사람의 말투, 습관, 행동, 일상 등에도 두루 적용됩니다. 사람 참 잘 안 바뀝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어떤 사람에 관한 자료가 흥미롭습니다. 진짜인지 꾸며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람의 초등학교 때 생활기록부 내용입니다.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쓰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입니다. 1. 재능이 없고, 성실하지 않으며, 교칙에 순응하지 않고 고집이 세며 고자세임 2. 또한 꾸지람하면 오만불손하며, 급우들 위로 군림하고 싶어 함. 만약 이런 사람이 커서 지도자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안 봐도 비디오겠습니다. 사람 참 잘 바뀝니다.



일자: 2024년 12월 18일(수)

제목: 계속 채워나가야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12장 38~45절

<‘전에 있던 집으로 되돌아가야지.' 하면서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자리 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공동번역 개정판, 44~45절)

저는 젊은 시절 한 때 미국에서 목회했으면 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베프들 몇이 유학이다 뭐다 하면서 떠나기에 미국 바람이 분 것이지요. 훗날 엉뚱하게도 영국으로 날아가는 일이 생겼습니다만. 런던에 갔을 때도 아예 그곳에서 살았으면 해서 URC교단에 들어가려 했습니다. 영주권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귀국하게 됐습니다. 하여튼 해외에서 살며 목회했으면 했던 젊은 시절 일은 이제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됐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런던으로 유학길에 오른 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아! 한인목회, 그거 쉬운 일이 아니군. 그곳에서 목회하고 계신 목회자들과 교제하면서 크게 놀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상당수 한인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한국을 떠났을 때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한인교회들의 실상이었습니다. 한국교회보다도 더 폐쇄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경우도 있고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국적을 떠나서 한인교회들은 비슷한 정서라고 합니다. 왜냐고요? 그 나라의 좋은 문화나 사고 또는 생활습관을 배우고 받아들이기보다 한국에서 체득했던 수준에 계속 머무르기 때문이지요. 제가 9년 동안 경험한 영국교회는 확실히 우리와 달랐습니다. 물론 그들이 옳고 우리는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상당히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많은 한인교회 성도들은 몸은 영국에 있으면서도 신앙 생활하는 방식은 여전히 한국식이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K목회라고 부르면서 좋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빈번한 갈등과 분열은 서울이나 런던이나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격이나 지식 또는 정서적인 면에서 점점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흔히들 말하는 나잇값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수준이 나치 독일의 히틀러나 이태리의 무솔리니에 머물고 있다면 그가 책임지고 있는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지옥자체 아닐까요?


저도 벌써 꼰대 세대가 되었지만 다음 세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젊은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 목회의 주 대상이 대부분 기성세대이고 특히 70~80대 어르신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군목으로 있을 때는 눈만 뜨면 젊은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거나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다음 세대와 오히려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계속 배우면서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는데 말입니다.


특히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지속적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최신 국제정세의 변화, 경제정책의 트렌드, 격변하는 문화 환경, 지구온난화 등 거시적인 주제들에 대한 학습을 두루 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도외시하면 즉시 어떤 시점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발전을 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채우지 않으면 과거에 발목 잡히게 될 것입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유행이나 좇는 수준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는 것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최고지도자가 게으르고 무능하면 국민전체가 개고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자: 2024년 12월 19일(목)

제목: 뛰어넘어야지요

본문: 마태복음 12장 46~50절

<그리고 제자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셨다.>(표준새번역, 49~50절)

“신목사님은 부산출신 아니신가요?”

“아닌데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무지 반가웠는데 고향이 부산이 아니시군요.”

“네, 저는 경남 진양 출신입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으로 진주시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매년 연감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전교 학생들의 흑백사진과 생년월일 주소 출석교회 그리고 출신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은 개인 정보법 때문에 불가능하겠지만 그때는 연감을 제작하고 배부하는 일을 당연시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연감이라고 불렀지만 우리 학생들은 ‘연애수첩’이라고 했습니다. 자매들 인적사항이 다 기록되어 있으니 누가 예쁘다느니 누가 누구와 사귄다느니 했거든요. 스무 살 스무두 살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흐릅니다. 저는 1983년 1학년 때 받은 그 연감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느 학교 출신이냐, 어느 지역 출신이냐, 어느 교회 출신이냐, 어느 단체 출신이야 등. 우리나라는 이런 학연이나 지연등과 연결 짓는 풍토가 유난히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혈연은 어떻겠습니까? 집안사람, 문중 사람, 같은 가문. 현실적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이러한 기제는 우리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능력이 채 미치지 않는데도 같은 대학출신이니 주요 자리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일은 21세기에 들어서도 현재진행형 아닙니까?


제가 3년 차 군종목사로 근무 중일 때 이른바 하나회 숙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저는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육군 모 부대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중령 한 분이 우리 부대 부연대장으로 내려왔는데 알고 보니 ‘하늘을 날다’가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을 지척에서 경호하던 신분에서 유배 오다시피 한 것입니다. 교회직분이 집사이어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면서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회는 대표적인 군내 사조직이었습니다. 학연 지연 소속 등 철저히 특정 인맥에 근거하여 행동했으므로 상급지휘관의 지휘나 통솔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요 보직과 진급도 싹쓸이하다시피 했고요. 따라서 하나회에 속하지 않은 장교들은 어지간히 노력해도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능력 청렴도 국가관 충성심 이런 것들은 그저 장식품에 불과할 때가 많았고요.


어느 공동체이든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목회자 세계도 그러하더군요. 한 때 우리 교단에서도 H사단이니 L사단이니 하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두 조직의 수장들이 다 고인이 되셔서 예전 같은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또 다른 조직이 교단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조직과는 늘 무관한 사람이라 초연한 편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갈등과 긴장관계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인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들. 교회는 인간적 관계를 과감히 뛰어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나라를 지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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