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많은 사람은 종종 힘들다
다섯 살쯤부터 가지고 있던 20년 정도 된 애착 인형이 있다. 이름은 키티
믿거나 말거나 초등학교 즈음부터 하나님께 기도했다
서른 넘어서 내가 철들게 되어도 키티를 버리지 않게 해 주세요!
스물여섯 가을 키티의 얼굴 부분이 심하게 찢어져
유명하다는 인형 병원에 방문했는데, 천이 너무 삭아서 복구가 불가하고
복각만 가능하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쓰렸지만 거금을 들여 키티를 복각하기로 했다
다른 인형들도 많았는데 왜 하필 키티랑은 정을 씨게 붙였을까?
사람 마음은 신기한 것이다.
이번에 나오게 된 작업실도 그렇다.
대학 때부터 작업실을 엄청 많이 옮겨 다녔는데,
이번 작업실은 이상하게도 빼기 일주일 전부터 섭섭해서 눈물바다다.
성수 쪽으로 첫 취업을 하며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
당장 퇴근하고 작업할 공간이 필요해서
일주일도 채 알아보지 않고 급하게 입주했다.
서운한 김에 이곳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 본다.
1.
하루의 마무리는 늘 이곳이었다.
업무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잰걸음으로 가게 되는 곳,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하러 가는 곳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샐러드나 베이글을 포장해서 가는 게 소소한 낙이었다.
작업실 생활은 참 외로워서, 외로운 느낌을 잊게 해 줄 아주 가벼운 콘텐츠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내가 이곳에서 자주 보던 콘텐츠는 브루클린 나인나인과 무엇이든 물어보살
2.
이 방은 조그만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 때문에 비쌌다. (음악작업실은 거의 지하고 창문이 없다)
근데 사용하는 내내 창문을 잘 안 열었다.
시간 감각이 사라지고 블라인드 틈으로 밖을 보면 밤이 되어있었다.
이곳에 놀러 온 나의 친구들은 여기에 있으면 시간이 사라진다고 신기해했다.
방음 때문인지 미묘하게 진공 상태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3.
이곳은 애인을 만나게 된 계기이자 우리의 작은 영화관이었다.
우리는 피아노 레슨을 해주다가 친해졌고 이곳에서 첫 산책을 했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작업실은 최고의 아지트였다.
모니터링 스피커로 영화를 틀어놓으면 프라이빗 영화관이 부럽지 않았고,
또 우리의 전용 음료컵인 '불의 잔'이 항상 상주해 있었다.
4.
음악을 나누는 시간들이 있었다.
일반인들의 목소리를 녹음해 주는 작은 클래스를 열었었는데,
행복하게 음악 즐기려고 오신 분들이라 내가 더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첫 테이크의 설렘 떨림을 함께했고 한 분 한 분 모두 기억난다.
한 시절이 가는 건 늘 살짝 쓸쓸한 것 같다.
테트리스처럼 꽉 찼지만 때때로 공허하고 외롭기도 한 시기였다.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빡빡하게 채워져서 그랬나 보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얻어가는 것들이 있었겠지!
드디어 퇴사한 음악인입니다!
제 작업물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younwho 에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