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영근 옥수수를 수염 떼고 깨끗이 다듬어 잎도 몇 장 함께 넣어 폭 삶아서 한 김 빠지길 기다리는 그 감칠맛 나는 시간은 참 즐겁다. 사실 밥보다 옥수수를 더 좋아한다는 걸 주변의 친구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옥수수철이 되면 느닷없이 두세 차례 배달되는 옥수수로 김치냉장고는 가득 차곤 한다. 올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옥수수는 수확 후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찌거나 삶아야 밑간 없이도 달큰하게 먹는다. 옥수수를 따서 바로 삶는 게 다르고 두세 시간 후에 삶는 게 다르고 한나절, 반나절, 하루를 넘겨 삶는 맛이 차례로 다르다. 사나흘이 지나면 옥수수 특유의 속청맛이 더해지고 단맛도 달아난다. 내 지론이 이쯤 되고 보니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그건 네가 맛있는 옥수수를 아직 못 먹어본 거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흔히 구하고 먹을 수 있는 옥수수를 추억의 음식이라고 하기엔 좀 그럴 테지만 내게 있어 옥수수는 그야말로 고향내음 물씬한 그리움의 맛이고 향수 가득한 간식임에 틀림없다.
타지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여름 방학 때마다 시골집에 내려가 지내곤 했는데, 그즈음이 한창 옥수수가 나오는 시기었다. 간식거리도 여의치 않던 그적, 어쩜 그렇게 맞춘 듯 차지고 맛있는 간식이 있었는지, 지금이야 옥수수도 재배종이 발달되어 찰진 옥수수가 많지만 그때만 해도 방학에 맞춰 먹을 수 있는 옥수수는 통통하고 기다란 메옥수수뿐이었다.
아버지가 삼태기 한가득 옥수수를 따다가 부려놓으시면, 엄마가 그걸 잘 다듬어 마당 한쪽에 화덕처럼 걸어놓은 양은솥에 넣어 불을 때서 삶아 주시곤 하셨다. 때로는 옥수수 알이 툭툭 터져서는 끈적한 옥수수살이 손가락마다 붙기 일쑤였는데 방금 솥에서 꺼낸 뜨거운 옥수수잎을 벋기고 자루 끝에 젓가락 하나를 푹 꽂아서 손에 들려주곤 하셨다. 호호 불며 먹는 그 맛이란 정말이지 말로 형용할 수도 없었던 기억이다.
여고시절 도시로 나와서도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그 맛을 기억하는 내 친구들과 다믄 며칠이라도 꼭 시골집으로 몰려가서 놀다 왔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마당가운데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놓아주시고 그것도 모지래 마당에 모기장까지 매어주시곤 하셨다. 채송화 봉숭아꽃이 아무렇게나 듬성듬성 피어 있던 마당과 몸이 훤이 드러나는 모시적삼을 입고 분주하던 부모님이랑, 갓베어다 모깃불은 놓아둔 쑥 타는 냄새와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와, 턱을 바치고 앉아 옥수수며 감자가 익기를 기다리던 친구들 모습과, 그것을 먹으며 은하수를 보고 별을 헤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새삼, 엄마 아버지가 보고지운 마음에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던 엄마의 모시적삼을 오랜만에 꺼내 가슴에 품어 본다.
배달되어 온 옥수수 한 상자가 온통 추억으로 물들게 했던 여름 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