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버지의 시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시간
“부모님을 ’괴산호국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습니다.” 큰 남동생의 전화에 우리 형제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왜? 어떻게? 무슨 이유로?’였다. 우리 기억 속의 아버지는 그런 일과 관계된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다. 깡촌의 오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대구로 나오셨고 오남매를 낳으신 분, 굉장히 머리 좋으셨던 아버지. 새벽부터 건재상 일을 시작해서 종일 일하고 저녁에 막걸리 한잔하고 불콰해진 얼굴로 들어오시던 것, 그리고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폭발적 분노로 가족을 힘들게 하셨던 것. 이게 나의 기억이다.
사람들이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기억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온화함, 안정감이 거기서 기인한다는 느낌이 올 때면 나의 예민함, 불안정함이 이해되었다. 어릴 때 조부모님 댁에 가면서 젊은 아버지가 나를 겨울 코트를 덮어 밤길에 업고 걸어가셨는데 그 코트 안의 따스했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있지만 아버지와 다른 무엇을 함께 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빼어난 미인인 어머니를 닮지 않고 얼굴도 피부도 기질도 아버지를 닮았다. 60년대 중반에 아버지의 건재상은 제법 번창했는데 이때 아버지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셨다. 하나는 운수업, 하나는 어디서 아셨는지 이태리 수도원에서 나온 마카로니라는 것을 수입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운수업은 기사가 인사사고를 내면서, 마카로니는 도대체 이게 뭔지 모르는 사회에서 통 설득력이 없는 품목이어서 우리집은 다시 힘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상하게 생기고 맛도 없고 잘 익지도 않는 마카로니를 국수로 삶아먹었다. 그게 갖가지의 파스타 국수였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한참 뒤에 알았다. 세상에, 아버지! 60년대 중반 한국에 파스타면이라니요. 그런 아버지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현실적 타산을 못 하는 것, 뛰쳐나가는 무모함, 그리고 집요함이 아버지가 내게 남기신 정신적 유산인 셈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호국원에 모셔질 수 있었을까? 시대로 보아 6.25 전쟁에 나가신 건 알았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신 적이 없었다. 알아보니 아버지는 1952년 전쟁 중에 병장일 때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고 중사로 제대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영천 3사단 소속으로 1950년 10월 1일 수도사단과 함께 원산 전투에 보병으로 참여하셨다고 한다. 이 전투는 6.25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고 북쪽으로 아군이 진격할 계기를 만들었다고 6.25 전쟁사는 기록하고 있었다. 둘째 남동생이 아버지가 ‘난 참 억울한 인생’이라고 우시는 걸 봤다는데 어떤 전투에서 한밤중에 주먹밥이 배달되고 참호가 너무 어두워 부대원들이 참호 밖에서 먹기로 했는데, 나와보니 반찬인 짠지(무 장아찌인 듯)를 두고와서 친구분과 다시 내려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짠지를 가지고 올라오니 그 사이에 폭격으로 부대원들이 모두 전사했다고 하셨다고.
그제사 나는 왜 아버지가 우리에게 전쟁에 대해 아무 말씀도 안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보병으로 영천에서 태백산맥을 서쪽으로 넘어 내륙으로 진격하고 다시 넘어 원산에 이르기까지 어찌 저런 장면이 한 번뿐이었겠는가.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마을 끝에 살던 스무 살 남짓 청년,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그 장면들을 마주했으며 어떻게 그것을 다시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있었겠나. 선택지도 퇴로도 없던 삶을 맨몸으로 마주해야 했던 기억을 어찌 되돌이키며 어찌 버릴 수 있으셨겠나?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절, 아버지는 지독한 트라우마를 안고 오남매의 가장으로 사시며 미처 자신의 고통을 되새기고 달랠 기회가 없으셨다. 그리고 아마 당신도 이해 못했을 것 같은, 느닷없는 분노로 그 고통이 튀어나왔을 것같다. 나는 사람이 자신이 타고난 그릇과 성향에 자신의 현재가 차지 않으면 불안과 분노가 가슴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대단히 총명했던 아버지는 아마도 자신이 타고난 그릇에 못 미치게 된 자신의 인생을 억울하다고 느끼신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는 49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부모님은 괴산호국원 20센티 정방형의 작은 돌 아래 누우셨다. 그 작음이 너무나 정갈하게 아름다웠다. 소박하게 겸손하게 이 땅에 장렬한 기여를 하신 아버지의 삶을 기록하기에 딱 좋았다. 아버지, 당신은 이 땅의 영웅이십니다! 저처럼 아버지도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