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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의 추상적 웅얼거림

만남, 조안 미첼과 나

by 조미향

만남, 조안 미첼과 나 1


세상의 모든 ‘스침’을 ‘만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치는 것’과 ‘만나는 것’을 구별하는 건 스치는 자들 혹은 만나는 자들 사이의 울림인 것 같다. 공간과 의식의 세계 속에 그 사이를 흔들고 가로질러 가는 파동, 그리고 울림.

과연 내 생에는 몇 번의 울림이 있었을까? 이 겨울 끝자락 미처 피지 않은 매화와도 나는 파동을 나눈다. 매화가 그간의 봄들에 내게 남겨준 울림을 기억하기에 이 봄에 필 매화가 천지에서 보내는 파동이 온몸으로 온다. 그래서 나는 어제 내가 ‘나의 매화나무들’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 매화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 나는 그 매화나무들을 ‘내 거’라고 말한다. 이월의 막바지 추위에 매화는 아직 봉오리를 맺지도 못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속하지 않아도 근거리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이런 관계에 놓인 존재가 있는 것 같다. 내게 조안 미첼(1925~1992)이라는 작가가 그렇다. 사실 나는 2002년까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시카고의 문화환경이 풍부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문학적 소양을 풍부하게 가진 그녀는 피겨스케이터 선수로, 시인이자 화가로 매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25세에 파리를 다녀오고 27세에 프랑스에 정착하여 작업을 하였다. 추상표현주의에 빠져서 책을 끼고 다녔던 내가 마크 로드코, 잭슨 폴락 등과 깊이 교유하던 그녀에 대해 몰랐던 건 내가 가진 책에서 프랑스에서 살며 작업하던 그녀를 다루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다. 하기야 추상표현주의가 워낙에 대작이 많은 데다 남성 중심적인 사조였으니 여성작가인 그녀를 도외시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건 바보짓이었다.


2001년 후학기, 대학원 졸업전을 앞두고도 내게는 하고 싶은 그림보다는 하기 싫은 그림의 목록만 수두룩했다. 형상을 가진 것, 이야기를 가진 것, 사회와 역사의 하부구조에서 주제를 찾는 것, 자기반복적인 것, 어제의 자기를 복제하는 것, 무엇보다 화가의 논리로 화면을 지배하는 것......이유가 많았다. 이를테면 식성 까다로운 식사 상대처럼 메뉴판 앞에서 까탈을 부리는 것이었다. 대학원 시절 수업하면서 교수님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단순하게!’였다. 색채와 구조와 화면을 정리해나가야 그림이 된다는 말씀인 듯했다. 그러나 입으로는 ‘네, 해보겠습니다.’하면서 내 마음 속에서는 언제나 ‘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있고 그렇다면 그건 지구에 있는 생각이고 그걸 표현하는 건 이런 생각을 가진 나의 일 아니야?’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가는 길은 몰랐다.

이를테면 밀림 앞에서 저 멀리 어디서 나는 향기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해선, 어떤 모르는 나무와 풀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심지어 독충과 위험한 짐승들조차도 가능한 곳을 지나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나는 전혀 모르는 길 앞에 서 있는 탐험가와 같았다. 당시의 내 짧은 지식으로는 주변에 그런 작업을 하는 사례를 볼 수가 없었다. ‘이런 류의 작품이요.’하고 교수님에게 내밀 자료도 없고 말로 설명하면 복잡하기만 했으니 ‘정리해 들어가라’는 조언에 묵묵부답일 수밖에.


2001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가족여행이 취소되면서 여행계획을 혼자 짜야 했다. 나의 선택은 망설임 없이 뉴욕!이었다. 영어도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방향치인 내가, 더구나 겁쟁이인 내가 두 주 만에 메일계정을 만들고 처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비행기와 한인 숙소를 예약했다. 집에 있을 가족들의 온갖 상황을 다 정리하고 학교의 학기말 정리까지 하고 바로 비행기를 타느라 녹초가 되어 맨하탄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의 주인은 그간 여러 차례 메일을 통해서 내게 왜 뉴욕에 오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다. 도착하는 날 저녁 주인은 바로 같이 외출하자고 했다. MOMA(뉴욕현대미술관?이라고 해야할지?)의 무료입장하는 저녁이라고. 쓰러질 만큼 피곤한데 무료라고 가야 하나 싶었지만 화가라고 그가 배려해둔 프로그램이기에 고마운 마음에 따라나섰다.

7bh4EII6jYs 조안 미첼, 그의 스튜디오

아! 모마의 입구에 들어서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조안 미첼 회고전! 아마 작고한 지 5,6년 이후에 이루어진 전시 같은데 한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작가의 작품 앞에서 나도 모르게 ‘봐! 되잖아!!’하고 외쳤다. 그래, 되는 거였다.

그날은 자세히 보지도 못하고 다음 날 다시 갔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이 이거였구나, 조안 미첼이라는 이 작가는 해냈구나 감탄하면서. 당연히 세상에 나만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비록 시대와 지역과 상황이 다르더라도 세상을 같은 눈으로 보고 해석을 같이 하는 존재가 어디엔가 함께 있다는 건 너무나 큰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반을 화집으로 채워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게 무거운 여행가방에 조안 미첼의 커다란 화집을 소중히 넣고 돌아왔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졸업전을 치렀다. 나만의 지도는 여전히 없지만 누군가 해냈다는 믿음으로 밀림 속을 들어갈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미향, Brushing Pass, 130x193cm, acryic on canvas, 2011


올해는 조안 미첼이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세계적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싼 네 명의 여성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뉴욕의 첼시에 있는 조안 미첼 재단은 그녀를 세세히 조명해나가는 작업을 올 한 해 펼쳐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봄 온 세상의 매화가 그렇듯 올해 그녀의 파동과 울림이 내게 가득 다가오리라.


그리고 더 깊은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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