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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의 추상적 웅얼거림

내 봄 나에게

by 조미향

내 봄 나에게

봄이 언제 어떻게 나에게로 오나?

대학 3학년이 끝나가는 2월, 서울에 들렀다. 그림 안 그리던 내가 그때도, 지금은 없어진 순화동 중앙일보사의 호암미술관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 호암미술관이 나의 미술학교였다. 그 이월의 전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된 것은 길에 떨어져 밟힌 초록잎 한 장이었다. 아마 졸업식 꽃다발에 있다 떨어져 행인들의 발에 짓눌린 것 같았다.

아, 그건 훅! 끼쳐오는 봄이었다. 어디에도 꽃은 피지 않고 날씨는 더없이 추웠는데 그 어둠 속에 주워 올린 초록잎에서 그해의 봄을 보았다. 향기를 맡았다.

봄은 내게 그렇게 오는 거였다.


내 몸과 마음은 봄을 어떻게 아나? 2월에는 날짜를 보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우수(雨水)를 알았다. 봄비보다 더 많이 몸과 마음이 젖어내려서 잠겨들어갈 때, 삶이 참 견디기 힘든다고 느껴질 때, 침대에서 눈을 뜨기도 전에 눈꺼풀 안에 눈물이 가득 찰 때 날짜를 확인하면 어김없이 우수였다. 봄이 비에 젖어 다가오듯 내 마음과 몸은 그렇게 젖어 봄에 다가갔다.

그런 봄들로 청소년기와 청춘을 다 보냈다.


그 시절에는 8월 10일을 기점으로 여름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햇살이 갑자기 살큼 가벼워지면 나는 가을을 앓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8월의 가을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심리학 논문에서 계절적 우울증은 변하는 외부환경인 계절에 호르몬 체계가 미처 적응을 못해 생기는 호르몬불균형의 문제라는 것을 읽었다. 그때의 당혹감이라니...... 그럼 곧 죽을 것 같은 불행감이 물류의 문제였다는 건가? 너무 억울하게 생각했는데 희한하게도 어느 봄, 내가 우수를 잊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마음의 어둠 속으로 걸어내려가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된 것 같았다. ‘그래 이건 물류 문제야’라고 생각한 것이 도움이 되었나 보았다.


작업실의 봄들은 제각각의 표정들로 내게 각인되었다. 대학원시절, 학교에서는 화장실도 없는 버려진 창고를 작업실로 제공했다. 어차피 야간이라 저녁에나 보는 학교였지만 주말 작업실의 봄밤은 더 깊었다. 간혹 하늘에 비행기와 달이 마주치는 모습도 보이고 소쩍새도 울었다. 의자 하나 이젤 하나 두고, 화장실을 한참 걸어가야 했던 그 작업실을, 그 야전성 때문에 나는 참 좋아했다. 내 작품에 그 야생성이 날 것의 형태로 깃들기를 바랐다.


청도의 100평이나 되는 농협창고를 작업실로 쓰기도 했다. 그 작업실은 지금은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정교한 벽돌벽 위에, 내가 빗소리증폭기라고 불렀던 양철지붕을 이고 있었다. 그리고 울림 있는 둔중한 소리를 내던 엄청나게 큰 철문. 슬쩍 열어 둔 틈으로 양명(陽明)한 들이 보였다. 그 풍경 아래 엎드려 있던 마을 노인이 향 짙은 쪽파를 들고 들어오시기도 했다. 더러는 유기농 딸기밭 주인이 작업할 때 드시라고 딸기를 가득 가져다 주시기도 했다. 봄의 끝 무렵엔 사방에 반짝이는 감나무 잎들 사이로 밀밭이 바람에 일렁였다. 유럽 밀밭보다 훨씬 미끈하게 키 큰 밀은 몰래 훔쳐본 고운 별당아씨 같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청도를 떠나야 해서 나는 경산의 복숭아 농가의 창고로 작업실을 옮겼다. 태어난 집에서 70 평생을 살아온 농부의 움직임은 인간의 행위라기보다는 자연의 그것이었다. 모든 농사가 그러하듯 그 역시 햇빛과 바람과 비에 따라 거름을 주고 가지를 치며 복숭아를 키우고 수확했다. 그 밭 옆에서, 나는 농부가 버린 가지를 골라 물에 꽂아두고 행여나 잎이 날까 마음 졸이며 기다린다. 농부는 유용함을 찾기 위해 무용(無用)한 것을 골라내고 화가는 그 무용 속에서 화가의 유용(有用)함을 찾아낸다.

경산의 작업실 옆에는 야생 배밭이 있다. 아무도 관심 없고 나만 배꽃이 만발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므로 나는 그 밭을 ‘ 나의 것’이라고 말한다. 배꽃이 피면 혼자 가지기엔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라 적막한 작업실에 친구들을 부르고 작은 봄잔치를 한다. 배꽃을 한 가지 안고 돌아가는 그들의 얼굴도 배꽃처럼 환하다. 그러고도 이화(李花)에 월백(月白)하는 봄밤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봄이 빠른지 친구가 빽빽하도록 만개한 봄꽃나무 사진들을 보내온다. 마치 답안지를 미리 보고 시험지를 받는 것 같다고나 할지. 친구, 나중에 한국에도 봄이 난만하면 사진을 보내주게. 나는 나만의 봄을 야금야금, 한 잎 한 잎, 천천히 긴장하면서 기다리고 맛보고 싶다네. 나는 내 봄을 나에게 주고 싶거든.



한 가지 꺾어다 둔 매화가 봉오리도 열리기 전에 향기로 먼저 거실을 채운다.

암향부동(暗香浮動)하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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