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꾹쑥꾹, 사랑사랑
교사이던 시절 해마다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여러분,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사랑을 잘 알 거 같아요?’ 학생들 답은 대개 후자 쪽이다. 교과서는 계속 순정만 가르치니까, 그리고 그들은 아직 순정의 시간에 속해있으니까.
사실 이게 내게는 난제였다. 나도 당연히 어느 쪽에 속한 인간이기는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 같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까 자꾸 의문이 생긴다. 아마 둘 다 사랑과 인간의 속성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없이 약해서 끊임없이 변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한없이 강인하기도 해서 의문의 여지 없이 한 길을 고수하기도 하는 게 인간, 인간의 사랑이니 둘 다 본질일 수도 있으려나 싶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에서 두 길을 다 가게 설계되어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올봄 첫 쑥국을 끓이다보니 지난 봄 집에 온 손님 생각이 난다. 전시를 하다 보면 의외의 인물과 만나는 일이 생기게 된다. 특히 해외전인 경우는 상당한 시간을 함께 먹고 자고 할 경우가 많다. 그런 인연들이 대개는 그냥 스쳐가지만, 가끔 처음 보는 작가의 가장 내밀한 삶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왜 처음 보는 나에게? 싶지만 나여서라기보다는 그런 경우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은, 자신 안에서 그 내밀하던 삶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더는 압력을 견딜 수 없을 때 그닥 나쁘지 않은, 처음 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마침 거기 있었던 것.
개인의 삶이라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총명하고 예쁜 그 작가는 일찌감치 일반적인 삶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신산하기 짝이 없는 그 고비들을 넘기는 힘은 오로지 그의 철저함, 일중독증이었다. 둘이 같은 호텔방을 썼는데 그녀가 밤 늦게 만취상태로 들어와서 허리를 꺾길래 놀라서 받치면서 내가 ‘재미있었어?’라고 물었더니 쉰 목소리로 ‘아,아니......’하더니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아, 작가로서 작업만 할 수 없는 그의 상황과 작품과 돈을 교환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 저렇게 재미없는 만취상태를 그에게 겪게 하는구나 일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전혀 연락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언제나 그랬을 것 같았다. 삼십 년 간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안 한 것 같았다. 일상적인 전화 한 통 조차도.
일 년 더 지나 어떤 전시장에서 그와 마주쳤다. ‘ 아, 언니 반가워요!’ ‘아, 오랜만이야!’ 하고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작년에 느닷없이 ‘나 언니한테 가서 자도 돼?’하고 전화가 왔다. 집에 와서 그는 아픈 사랑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내게 보여주고 또 들여다보면서 ‘왜 이런 마음이 달라졌냐고......’ 하염없이 울면서 한탄했다.
그때가 봄이라 집에 매화가 꽂혀 있었다. ‘언니 이거 무슨 꽃이야? 향기가 좋아.’, ‘매화야’, ‘아 이게 매화라는 거야?’, ‘언니는 왜 내가 갖고 싶은 거 많이 갖고 있어?’, ‘내가 뭘?’, ‘피아노가 있잖아.’ 이게 두 밤을 자면서 우리가 나눈 말들이었다. 아침에 쑥국을 끓여 먹였다. ‘언니, 이거 무슨 풀이야? 처음 먹어봐. 맛이 묘해요.’ ‘아이고, 이 사람아 어째 오십 되도록 쑥국을 모르노?’, ‘아, 이게 쑥국이구나.’ 아침 밥상에서 이런 대화를 하면서 마음이 애연했다. 한국 사람으로 오십 되도록 살면서 쑥국도 모르는 삶이라니, 그에겐 ‘당연함’이라는 보호자가 없었다.
자꾸 울먹울먹해서 산책이라도 가라고 내보냈다. 한참 만에 와서 ‘언니, 나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서 시간 보내는 거 왜 하는지 몰랐거든. 카페에서 멍하니 앉아 있으니 언니가 매화라고 알려 준 거 있어서 한참 보고 그 아래 고양이도 봤어. 좋더라, 처음 해 봤어.’ 그에겐 ‘흘려보냄’도 없었다. 삶이 그저 전투였던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있을 때 그는 아무 것도 안 했다. 밥 주면 밥 먹고, 걷자면 걷고. 그래도 가는 곳마다 행동마다 사진은 찍었다. 그리고 이 도시에 있는 그의 연인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외지에 있어서 못 온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못 보는 거야......’ 아무 것도 안 한 게 아니었다. 간곡하게 기다리는 것, 마음에 곡진함이 가득 차서 밖으로 보이는 어떤 행동도 그는 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날 이 도시에 그의 연인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못 보는 거야......’를 계속 되뇌일 수도 없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힘들었다. ‘사랑’ 문제에 해석이나 조언은 하지 않는 나지만 아픈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있잖아, 사람의 자리란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요구한다고 그게 손에 안 쥐어져. 상대가 있으라고 하는 자리 그것만이 나의 자리야. 내가 못나서도 상대가 잘나서도 아니야. 그냥 인간관계, 특히 사랑이 그렇게 생긴 거 같아. 어쩌겠어? 돈이면 졸라서라도 받지만 마음을 받아야 하니까 상대의 손에 달린 거지. 지금은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아. 돌아가서 일 해.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봐야 할 것 같아.’
이틀 뒤에 전화하니 그는 연인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를 더 묵어갔다고 한다. 물론 못 만났다.
좀 있으면 쑥국새가 운다. 두견이라고도 하고 소쩍새, 접동새, 귀촉도라고도 한다. 밤에 주로 우는 이 새는 소리가 밖으로 뱉어지지 않고 안으로 흡입하는 듯한 소리를 낸다. 여러 전설을 가진 이 새는 한결같이 곡진한 한(恨)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시인 서정주는 그의 시, ‘귀촉도’에서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고 썼다.
언제나 그랬듯 이 봄도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매화와 자두와 배와 사과, 그리고도 여러 꽃들을 흩뿌려준다. 그리고 밤에는 쑥국새가 울게 한다.
‘쑥국쑥국, 사랑사랑......’
그래,저 새는 안다. 낭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