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달항아리 연재19

by 이종열

《달항아리 연재19》

세상을 살다 보면 특별히 잘해 주는 것도 없는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엄청 잘 해줘도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죄수의 딜레마는 공범으로 의심되는 두 명의 용의자를 따로 불러 자백할 기회를 줍니다. ‘둘 다 자백하지 않으면 징역 1년. 둘 중 한 명은 자백하고 한 명은 자백하지 않으면, 자백한 쪽을 석방, 자백하지 않는 쪽은 징역 10년. 둘 다 자백하면 각각 5년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범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두 사람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면, 상대방이 취하는 행동과 무관하게 자신이 자백하는 것이 이득이므로 둘 다 자백하게 됩니다. 그 결과 둘 다 5년의 징역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각자가 최선의 이익을 보려는 행동으로 인해 둘 다 침묵하면 1년의 징역으로 큰 이익을 얻을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지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죄수의 딜레마에서 최적의 전략은 티포탯(Tit-for-tat) 전략입니다. 처음에는 상대방과 협력한 뒤, 다음번에는 상대방이 지난번에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에 협력한 뒤에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배신하고, 상대방이 협력했다면 나도 협력하는 식입니다.

'눈에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한다는 이 전략이 가장 고전적인 전략이긴 하나 이 전략이 온갖 꼼수와 치사함이 난무하는 곳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전략이라고 하니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합니다. 돈과 시간이 제한적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제일 난해한 문제는 인간관계입니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까요? 주관식은 어려우니 객관식으로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➀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➁ 내가 좋아하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 ➂ 내가 싫어하지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➃ 내가 싫어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 인간관계는 크게 이 네 가지 범주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정답은 ➀ ➂ 에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주변의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2명은 무조건 나를 좋아하고, 2명은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중간에 절대 다수 6명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내가 뭘 해도 관심도 없거나,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준 만큼 받지 못하거나 기대한 만큼 반응이 없으면 자기 혼자 상처받고 아파합니다.

100을 쏟아부었는데 10이 나온다면 불필요한 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를 과감하게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10을 넣었는데 100이 나오는 나를 좋아해 주는 두 사람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미 티포탯(Tit-for-tat) 전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 합니다. 상처 준 사람에게 복수하려 합니다. 어제 점심을 네가 샀으니 오늘 점심을 내가 산다는 식입니다. 사람은 준 만큼 받지 못하면 사람은 고통스러워합니다. 다들 주기보다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이 많이 많이 삭막해졌습니다.

삭막한 이 세상에 하나님이 내린 처방책은 ’사랑‘입니다.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라고 합니다. 어제 점심을 샀더라도 오늘 점심도 사라고 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13:1~3)

사랑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그 사랑이 과연 무엇일까요? 당신은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오늘도 나는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그 사랑을 잡으려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달항아리는 말린입술 유약요변 둥근달항아리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➀번 같은 사람입니다. 달항아리 아트뮤즈에서 소장하고 있는 많은 달항아리 중에 유독 이 달항아리에 마음이 갑니다.

만난 지도 가장 오래되었고, 함께 일도 제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달항아리랍니다. 나는 세상에서 이 달항아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또 제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달항아리의 위대함은 세상에 처음 나온 달항아리 크리스탈잔(달잔)의 엄마가 된 것입니다.

높이 45cm, 몸체지름 41cm, 입지름 19cm, 밑지름 18cm로 360도 전체가 다 아름다운 달항아리입니다. 둥글게 말린 입술과 굽의 너비가 비슷한 형태에 따뜻한 우윳빛의 유백자입니다. 몸체 중앙에는 이어 붙인 흔적이 배꼽처럼 남아 있습니다. 굽의 깎임새는 치마처럼 넓게 펴져 있어 단정하고 풍만한 균형미가 풍겨져 나옵니다.

유약이 덜 섞이는 바람에 굽는 과정에서 수분이 날아가고 온몸에 황톳빛 그림을 그렸습니다. 막걸리로 부연 설명 드리자면, 마트에서 막걸리를 사면 밑바닥에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마실 때 병을 막 흔들어서 섞습니다. 한참 흔들고 나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잘 섞인 것 같은데, 마지막 잔을 따라보면 덜 섞이고 건더기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유약을 기계로 섞습니다. 골고루 섞이기 때문에 절대 요변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도공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막대기로 저었습니다. 이 달항아리는 사람의 눈에는 잘 섞인 것 같은데, 덜 섞인 유약이 발려져서 구워진 것입니다. 가마에서 구워질 때 변화를 일으킨 것을 요변이라 이름 붙입니다. 백자 중에서 요변 자체가 희소하며, 특히 달항아리 중에서 유약요변을 일으킨 달항아리는 이 달항아리가 유일합니다.

한편의 추상화처럼 느껴지는 표면의 무늬는 리움미술관의 국보 309호를 떠올리게 합니다. 높이(키) 44cm인 리움의 달항아리는 장물이 스며들어서 만들어진 추상화이나, 이 달항아리는 유약 자체가 변이를 일으켜 생긴 것입니다.

유약 요변의 흔적은 보리밭에 바람이 지나간 것처럼 제멋대롭니다. 불길이 그렸기에 어린아이가 항칠한 것처럼 꾸밈이 없고 자연스럽습니다. 세상에 다시 없는 완벽하지 않아 완벽한 달항아리입니다. 아래 시는 내 인생의 동반자 달항아리를 처음 봤을 때 담은 느낌입니다.


《말린입술 유약요변 둥근달항아리》


사랑에 빠지면

젊거나 늙거나 나이 불문

예쁘거나 안 예쁘거나 인물 불문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 재산 불문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내 사랑 둥근 요변달

세상 하나뿐인 둥근 요변달항아리

불의 시험으로 온몸에 화상 당한 상처도

그 상처 위에 덜입혀진 유약도

더 많이 사랑할 이유가 되니

불치병인줄 알면서

더 깊이 사랑하는 상사병이다

그대에게 묻는다

이 세상에 너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냐고,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눈뜬장님이라 행복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범죄의 도시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사랑만이 처방전입니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나는 눈뜬 장님으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찾고 있습니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이 달항아리가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부터 가뭄 뒤에 장마같는 설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달항아리의 충만함을 나누는 설날 되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 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