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달항아리

by 이종열

겨울이 오면 안다

가을이 지나면

삶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라는 사실을

비움이 곧 채움이라는 걸

인생의 겨울에

달항아리의 진가를 본다


달정원(달품서가 자개정원)에 달항아리가 둥지를 틀었다.

햇볕 한 줌마저 귀한 겨울,

달항아리는 그마저도 내려놓은 채 서 있다.

《겨울 달항아리》는 계절의 비유를 빌려 인생의 방향을 되묻는 시다.

이 시에서 겨울은 쇠퇴가 아니라, 삶의 구조가 드러나는 시간이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삶은 축적의 연속이 아니라, 선택과 삭제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더하기가 아니라 / 빼기라는 사실을”이라는 구절은

성장과 성취를 미덕으로 삼아온 통념에서의 이탈이다.

젊음이 확장의 계절이라면,

인생의 겨울은 밀도를 결정하는 계절이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가 삶의 형태를 만든다.

이때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형식이며,

정리된 구조다.

달항아리는 이 인식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한 존재다.

장식은 없고, 형태는 단순하며, 내부는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비어 있음은 공백이 아니라 균형의 조건이다.

어긋난 두 반구가 만들어낸 불완전한 대칭은

오히려 전체를 안정시킨다.

달항아리는 비움을 통해 완결에 이른다.

“인생의 겨울에 / 달항아리 진가를 본다”는 구절은

관념이 아니라 경험의 선언이다.

젊을 때는 문양과 기교가 먼저 보이지만,

삶이 겨울에 접어들면

남는 것은 형태와 무게, 그리고 침묵이다.

그때서야 달항아리는

장식물이 아니라 삶의 구조로 다가온다.

이 시가 말하는 겨울은 끝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본질만으로 서는 계절이다.

비움이 곧 채움이라는 역설은

인생의 후반에서야 체득되는 지혜다.

《겨울 달항아리》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보여준다.

겨울이 와야,

달항아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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