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효용 ― 토사구팽의 계절 구조》

by 이종열

계절은 변하고, 필요는 이동한다.

문제는 그 이동의 속도다.

《겨울 잠바》는 단 다섯 행으로 하나의 구조를 드러낸다.

“엄동에 제일 필요한 것”이 “꽃 피고 새 울자 가장 먼저 버려진다.”

이 전환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효용의 문제다.

겨울은 생존의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서 잠바는 분명한 존재 이유를 가진다.

그러나 봄은 생존을 요구하지 않는다.

요구가 사라지는 순간, 존재 이유도 사라진다.

여기에는 배신도, 악의도 없다.

있다면 단 하나, 필요의 종료뿐이다.

토사구팽(兔死狗烹)은 흔히 권력의 배신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본질은 훨씬 단순하다.

목적이 소멸하면 수단은 정리된다.

이 원리는 정치의 정점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조직에서, 관계에서, 시대에서, 심지어 개인의 기억 속에서도 반복된다.

절실함이 최고조에 달할 때 가장 뜨겁게 호출되던 존재는

그 절실함이 해소되는 순간 가장 빠르게 퇴장한다.

이것은 인간의 잔혹성이라기보다

효율을 우선하는 사고의 자동 반응에 가깝다.

현재를 유지하는 데 불필요한 것은 제거된다.

감사는 유지 비용이 들고

기억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효용은 계산을 요구하지만

신의는 지속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시스템은

결국 계산을 택한다.

그래서 시의 마지막 행이 서늘하다.

“봄이 무섭다.”

봄이 무서운 이유는 따뜻함 때문이 아니다.

따뜻함이 가져오는 망각의 속도 때문이다.

어제의 절실함은 오늘의 거추장스러움이 된다.

그리고 그 전환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이루어진다.

이 시가 날카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다.

겨울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

봄의 환희도 말하지 않는다.

오직 전환의 순간, 가치가 뒤집히는 찰나만을 붙든다.

존재가 평가로 환원되는 세계에서

“필요했다”는 사실은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빠른 폐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결국 《겨울 잠바》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를 판단하는가.

필요인가, 관계인가.

효용인가, 기억인가.

꽃이 피고 새가 울면

세상은 봄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 따뜻함 속에는

쓸모의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차가운 손길이 숨어 있다.

그래서 봄은 아름답지만

구조적으로는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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