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로 새긴 침묵, 도자기라는 이름의 신뢰》

by 이종열

글은 본래 읽히기 위해 태어난다. 그것이 글의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만 맞추어 쓰인 글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이내 시드는 풀이나 꽃과 같다. 반면, 오로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묵묵히 써 내려가는 일은 밋밋한 나무의 생을 닮았다.

나무는 누구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는다. 계절을 앞당기려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으며, 가뭄이 오면 성장을 늦출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몸 안에 새겨 넣은 시간이 바로 나이테다.

나의 글쓰기와 삶 역시 이러한 나무의 생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 곁에는 내가 오래 사랑해 온 도자기가 있다. 내가 도자기에 마음을 두는 이유는 세간이 말하는 아름다움이나 희소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수식일 뿐이다. 내가 도자기를 곁에 두는 진짜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자기의 시작은 세상에서 가장 불안정한 물질인 흙이다. 그러나 가마라는 혹독한 시간 속에 들어가는 순간, 흙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불의 온도와 산소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타협이 아닌 통과의례를 치른다. 견디지 못한 것은 형태를 잃고 사라지지만, 견뎌낸 것은 흙에서 돌로, 유약에서 유리로 다시 태어난다.

이 변이의 과정을 지나고 나면 도자기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변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통과했기에, 역설적으로 변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도자기와 사람을 떠올린다. 세상의 인심은 쉽게 바뀌고, 사람의 약속은 종종 조건부다.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고 시간 앞에서 말이 달라지는 관계 속에서, 나는 배신하지 않는 존재를 갈구했다.

도자기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안에는 한 번 결정된 형태를 끝까지 책임지는 결단이 들어 있다. 그 단단한 물성 앞에서 나의 마음은 비로소 멈춘다. 도자기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오래 두고 보아도 처음의 상태를 지켜내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위로가 된다.

결국 나의 글 《숙명》과 도자기에 대한 사유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그것은 자기 속도로 서 있는 존재에 대한 경외다. 나무가 오늘을 버텼기에 하나의 나이테를 얻었듯, 도자기는 불을 견뎠기에 변치 않는 몸을 얻었다.

나는 여전히 변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지만, 변하지 않기를 선택한 존재들을 곁에 두고 싶다. 뿌리를 뽑지 않는 나무처럼,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도자기처럼, 나 또한 나의 속도로 서 있을 것이다.

글은 잎이 되어 떨어질지라도 그 안에 새겨진 시는 나이테가 되어 남는다.

한 그루의 나무로, 그리고 변하지 않는 도자기의 침묵으로

나는 계속 나의 길을 갈 것이다.

그래, 그 말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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