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꾸 더 큰 행복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엄청난 그 무엇을 가져도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달멍’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사람들이 달항아리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달항아리는 사람들에게 ‘비움’이 ‘채움’이라고 속삭입니다. 부족함이 완벽함을 넘어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세상이 사람들에게 전했던 메시지는 ‘채움’이 갑이고, ‘완벽함’만이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진은 땅을 뒤흔듭니다. 터가 흔들리는데 집들은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빠른 세상의 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AI의 등장으로 그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100년 동안 되어 질 일이 일 년 만에 이뤄지고, 어떤 것은 한 달 만에 바뀌고 있습니다. 생각이 뿌리를 내릴 시간이 없습니다. 바쁘게 흘러가기 때문에 우리는 미증유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만의 난공불낙이라 여겼던 문화 예술 창작의 분야도 AI에게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10년 안에 무수한 직업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내 밥그릇의 걱정도 한 짐인데, 세계 도처의 전쟁과 국내외 정치상황은 더욱더 큰 짐을 어깨에 올리고 있습니다. 불안한 당신은 어디에다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무엇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나요?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멍때림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멍때림 대회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 캠핑이 유행인 것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불을 멍하니 쳐다보는 ‘불멍’ 때문입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마음은 불안으로부터 놓임을 받습니다. 옛날부터 달항아리는 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최근에 인기가 급상승하는 이유는 바로 ‘달멍’ 때문입니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도깨비가 많이 살았습니다. 호랑이가 이 땅 한반도에서 사라지고 가로등이 도처에 깔리자 도깨비가 함께 사라졌습니다. 어린 시절에 동네 어른들에게 장에 갔다 오다가 밤중 산길에서 도깨비를 만나 밤새 씨름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도깨비랑 싸울 때 하늘을 보고 싸우면 진다고 합니다. 위로 올려다보고 싸우면 도깨비가 산처럼 커져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밑으로 깔아보고 싸우면 개미처럼 작아져서 쉽게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옛 어른들의 도깨비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과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배웁니다. 위로 올려보고 세상에 눌림 당하고, 문제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맞선 그 자신감으로 문제로부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비움과 불완전성의 달항아리가 이 불안의 시대를 이기고 있습니다. 달항아리 통해서 사람들이 위로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위대한 문화유산인 달항아리가 세상에 온 것은 이때를 위함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는 ‘프리마의 달항아리’입니다. 이 달항아리는 키(높이) 48.2cm, 몸통 지름이 50cm로 엄청 대형 달항아리입니다. 굽이 높고 몸통이 넓어서 실제보다 더 웅장하게 보입니다. 키보다 빵이 넓은 달항아리를 감형 달항아리라 부릅니다. 일반적인 형태의 달항아리에 비해 그 수가 극히 적습니다.
이 달항아리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2007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울 청담동 프리마 호텔 이상준 회장이 1,272,000달러에 낙찰받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환률로 계산하면 18억이며, 당시 한국도자기로 최고가의 경매가로 낙찰되었습니다.
작년 6월에 『달항아리 하양꽃으로 피다』 발간했습니다. 달항아리 관련 단행본으로서는 개인이 발행한 최초의 책입니다. 그 책을 이상준 회장님이 읽고 감동 받아서 청담동 갤러리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프리마의 달’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볼 인연을 얻은 것이지요.
이 회장님이 이 달항아리를 환수하게 된 비화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 관장님이 미국에서 국제전화로 이 달항아리 환수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국보급 달항아리가 소더비 경매에 나왔는데, 주위에 고액의 자금을 대고 환수할 사람이 없으니, 이 회장님이 어렵더라도 꼭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갔답니다. 뒤늦게 경매에 참여해서 어렵게 낙찰을 받았답니다. 감동의 그 순간을 회상하면서 말씀하시는데, 여전히 그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이 달항아리를 백억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도저히 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심장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목숨처럼 여기는 것을 돈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돈이 된다고 자식을 팔 수는 없으니까요.
정양모 관장님의 부탁도 있었지만, 환수는 이상준 회장의 안목이 결정적이었다. 환수한 도자기를 전시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 작은 박물관을 마련했습니다. 해외에서 틈틈이 환수한 미공개 문화재가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호텔이 미술관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한국에 미술관과 호텔의 융합이 시작되었습니다.
프리마 호텔은 1999년 이 회장님 취임 당시는 60억원 연매출을 올리는 B급 호텔이었습니다. 호텔에 문화 예술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해졌으며, 특히 달항아리를 중앙 로비에 전시한 그해부터는 연매출 300억원을 올리는 유명한 호텔이 되었습니다. 이 회장님의 표현을 빌자면 “달항아리가 호텔에 들어온 그날부터 방문객들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특히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왔는데, 그 달항아리를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엄숙해서 놀랐다고 합니다.
이 달항아리의 다른 달항아리와 차별성은 감형인 것과 밑바닥이 참외 배꼽처럼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이대표도 배꼽 한번 만져보세요. 사람들은 이거 한번 만져보고 싶어서 난립니다.” 확실히 다른 달항아리와 달리 용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프리마 호텔에 달항아리가 둥지를 틀고 나서부터 유명한 호텔이 된 것을 두고 사람들은 달항아리가 부(副)를 부른다는 환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재산을 부르는 상징으로 달항아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자집에 가면 너나없이 도자기 달항아리나 달항아리 그림이 안방이나 거실에 꼭 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진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달항아리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달항아리를 거실이나 안방에 갖다 놓은 부자들은 ‘비움’이 ‘채움’이라고 속삭이는 달항아리의 메시지에 집중했을 것입니다. 부족하고 불완전한 그대로의 자신 모습을 받아들이고, 완벽함의 강박을 극복했을 것입니다. 악착같이 채우겠다는 마음에서 ‘비움’으로 돌아서는 그 마음이 진정한 부자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