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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쯔뜨끄 Mar 28. 2016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2)_두 개의 같은 상처

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1)_분홍색 편지봉투 보러가기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어요.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어요. 그때, 그가 내가 앉은 곳으로 걸어왔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카페 안에는 자리도 많았어요. 그는 너무 자연스럽게 내 앞자리에 앉았어요. 그리고 싱긋 웃었어요. 그가 검은색 가죽 장갑을 벗는데 뭔가 반짝였어요. 반지였어요."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녀는 내 왼손을 보고 있었다. 난 슬며시 오른손으로 왼손을 덮었다.


 "난 상관없었어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요. 서로에 대한 사랑만 있다면, 그가 끼고 있는 반지는 아무 의미 없는 그냥 쇠 일 뿐이니까요."


 그녀의 눈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왼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눈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 차 올랐다. 하지만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고, 길게 내뱉었다.


 "그가 날 먼저 유혹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내가 먼저 다가간 거예요, 그에게. 그를 처음부터 몰래 훔쳐본 건 나니까. 어쩌면 난 그를 그냥 보기만 한 게 아닐지도 몰라요. 나도 모르게 속으로 계속 생각했겠죠. 내게로 다가와라, 다가와라, 주문을 외웠을지도 몰라요. 내가 먼저 그를 유혹한 거예요."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도 나를 바라봤다. 우리는 서로 한참을 말없이 바라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표정은 더 당당해졌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있던 그녀는 왼쪽 다리를 들어 오른쪽 다리에 얌전히 올려놨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의자 깊숙이 더 들어앉았다.


 "횡단보도에서부터 날 봤다고 말하더군요. 난 바로 그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어요. 그는 빙긋 웃으며 반듯한 명함을 꺼내 나에게 줬어요. 그 날 우리는 한참 동안 얘기를 했어요.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아요. 그 날, 난, 그에게 푹 빠져있었으니까…… 그 사람은, 그이는 정말 엄청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날 저녁, 난 그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요."






2



 가게 안은 조용했어요. 그 여자를 찾아 가게를 둘러볼 것도 없었어요. 가게 안에는 딱 한 사람만 앉아있었거든요. 가게 구석 창가, 긴 머리를 낮게 묶은 여자. 내가 만나기로 한 그 여자구나. 뒷모습만 보였는데도 난 알 수 있었어요. 남편이…… 남편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였으니까.


 그 날 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나갔어요. 그 여자는 나보다 먼저 와 있었죠. 한참을 출입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서 있었어요. 그 여자의 뒷모습을 보는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어요. 난 재빨리 화장실로 뛰어갔어요. 변기 위에 앉아 입을 틀어막고, 입을 틀어막고 울었어요. 


 '그냥 꿈이면 좋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난...... 도대체 여길 왜 나온 거야!'


 한참 눈물만 쏟아내고 있는데, 누군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더군요.


 “괜찮으세요?”


 가게 직원이었어요. 가까스로 울음을 누르고 괜찮다고, 별 일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러고도 한참 후에 난 화장실에서 나왔어요. 드디어 그 여자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그런데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난 그 여자가 앉아 있던 그 자리로 걸어갔죠. 작은 쪽지가 놓여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일이 생겨 먼저 가보겠습니다. 마음이 진정되시면 다시 연락 주세요. 꼭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남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오늘 조금 늦을 거 같아요. 저녁 먹고 갈게요.]


 남편에게 전화를 했어요. 받질 않더군요. 그 여자와 만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바보같이 화장실에서 울고 있지만 않았어도, 그 여자와 남편이 만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너무 한심했어요.


 지금껏 살면서 느낀 가장 무거운 걸음으로 집까지 걸어왔어요. 한 걸음, 큰아이의 얼굴이 보였어요. 두 걸음, 둘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세 걸음, 남편의 등이 보였고 그 등은 곧 그 여자의 뒷모습으로 바뀌었어요. 그 여자의 뒷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내 걸음에 붙어있었어요. 그래도 난 걸었어요. 걷는 것 말고 달리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집으로 돌아와 불도 켜지 않고 바로 잠이 들었어요. 일어났을 때 방 안은 캄캄했어요. 눈은 떴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옆자리에 아무도 없었어요. 방문이 조용히 열렸어요. 순간 거실 불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어요. 둘째였어요.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더군요. 이제 막 변성기를 겪고 있는 둘째의 목소리에서 남편의 소리가 들렸어요. 둘째에게 아빠는 들어왔냐고 물었더니, 아빠 안 들어왔냐고 되묻더군요. 몇 시냐고 물었어요. 밤 열두 시래요. 아빠 늦으신다고 했다고, 걱정 말고 자라고 둘째에게 말했어요. 둘째는 알았다고 말하고, 방문을 닫았어요.


 곧 거실 텔레비전 소리가 꺼졌어요. 둘째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제 집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조용한 집 안에 가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어요.


 화장대 위에 있는 남편의 향수가 생각났어요. 한참을 가만히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어요. 난 남편의 향수병을 들고 곧장 화장실로 갔어요. 변기에 남편의 향수를 몽땅 쏟아 버렸어요.

 남편의 역겨운 향수 냄새가 화악 올라왔어요.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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