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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쯔뜨끄 Mar 29. 2016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3)_그와 벚꽃

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1)_분홍색 편지봉투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2)_두 개의 같은 상처



 “난 아직 학생이라 여유시간이 많았지만, 그이는 바쁜 직장인이잖아요. 내가 먼저 연락하기가 미안했거든요. 그런 내 맘을 아는지 그이는 항상 먼저 연락해줬어요.


 데이트를 할 때도 공연히 그이가 불편해할까 봐…… 난, 잡고 싶은 그이의 손도 맘껏 잡지 못 했어요. 나이 차이 많은 그와 저를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사실 난 괜찮은데, 괜히 그이를 사람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혼자 걱정 됐거든요.


 언젠가 한 번은 그이가 작은 카페로 저를 불렀어요. 중학교 앞에 있는 구석진 카페였어요. 처음에는 그곳이 어딘지 몰랐어요. 그이가 사는 동네, 그이가 자주 다니는 카페였어요. 전 서둘러 일어나 나가려고 했어요. 너무, 너무 위험했으니까요. 그때, 그이가 제 손을 꽉 잡고는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웃으며 절 바라봤어요. 그이의 손은 참 따뜻했어요.


 우린 한동안 그 카페에 앉아있었어요.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를 하며, 보통의 날처럼 그렇게. 두 손 꼭 잡고.”

그녀는 또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 보다 한 톤 더 높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봐도 우린 부부였어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그녀는…… 정말 부부가 되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사랑에 빠진 여자의 눈빛이었다. 먼저 눈을 피한 건 나였다. 나는 눈을 깊이 감았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 오랜 정적이 흘렀다. 더위가 몰려왔다. 나는 앞에 놓인 유리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손으로 부채 질을 했다. 그녀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그녀는 가방을 열어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손수건이었다. 정사각형으로 곱게 접은 손수건은 작은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내게 손수건을 내밀고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나는 얼른 재킷 주머니에서 내 하얀 손수건을 꺼내 보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손수건을 꼭 쥐며 말했다.


 "그이가 사 준거예요. 이 손수건이요. 나는 원래 땀이 많아요. 조금이라도 빨리 걸으면 겨울에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정도예요. 그 날 그이와의 약속에 늦었어요. 난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 아니거든요. 난 그이가 기다릴까 봐 마음이 급했어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어서 뛰지도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그이에게 갔어요. 그이는 날 보더니 어디 아프냐고 물었어요. 이마에 땀이 많이 났다고. 난 부끄러워 얼른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닦았죠. 휴지가 땀에 젖어 이마에 남아 있었나 봐요. 그이는 싱긋 웃으며 이마에서 휴지를 떼 줬어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꼭 쥔 손을 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이가 선물이라며 작은 상자를 내밀었어요. 맞아요, 이 손수건이었어요. 분홍색 벚꽃이 가득 한 손수건. 벚꽃에서 그이의 향수 냄새가 났어요."






3



 며칠 동안 남편과 마주하지 않았어요. 못 보겠더라 구요. 남편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욕이 튀어나오던 뭔가 추한 꼴을 보일 것 같았어요. 남편이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난 침대 위에 그저 누워있었어요. 남편에게는 그냥 아프다고 했어요. 환절기 감기인 것 같다고. 남편은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했어요. 난 생각했죠.


 '그래, 그냥 환절기 감기 같은 거야. 곧 괜찮아질 거야.'


 아마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 거예요. 아니, 사실 확실히 잘 모르겠어요. 그 편지를 받은 다음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요. 그날 그날 날짜 볼 겨를이 없었어요. 어제 같은 오늘을 살았고, 오늘 같은 어제를 살았어요. 그렇게 며칠이 흘렀어요. 난 다시 그 여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먼저 연락을 하려니 다시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차마 누르지 못 해 한참 동안 전화기만 들고 있었어요.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갑자기 그 여자의 뒷모습이 생각났어요. 그 가게 안의 온도도, 라벤더 향이 은은하던 가게 안 냄새도. 생각만 해도 왈칵왈칵 눈물이 올라왔어요. 억울했어요.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내가 긴장하고, 왜 내가 울어야 하지. 내가 바보 같았어요.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고 싶었어요. 나를 아끼는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남편을, 그 여자를 욕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천박함이 줄줄 흐르는 목소리로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실컷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난, 내 얘기를 가감 없이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요. 그 누구에게도 진짜 내 마음을 얘기해 본 적이 없거든요. 나의 초라한 모습을 내 스스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친구들에게도 친정 식구들에게도 나는 완벽한 사람으로, 부러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었어요.


 용기를 내서 겨우 문자를 보냈어요.


 [만났으면 합니다.]


 그리고 바로 답장이 왔어요.


 [오늘 오후 네 시 괜찮으세요? 제가 동네로 갈게요. 중학교 앞에 카페 어떠세요?]


 그 여자는 나를 어지간히도 만나고 싶나 봐요. 도대체 왜, 뻔뻔하기 그지없는 여자였어요.


 아마 그 여자는 이미 내 동네에도 왔었나 봐요. 중학교 앞에 카페는 워낙 구석진 곳에 있어서 웬만한 동네 사람도 잘 모르는 곳이거든요. 조용한 그 카페를 남편과 전 참 좋아했어요……


 아마 남편이 그 여잘 동네로 끌어들인 거겠죠.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동네 엄마들이 보면 어쩌려고……

 난 절대 남편의 외도를 동네 엄마들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지난번 그곳에서 만나죠.]


 내가 다시 장소를 정했어요. 


 거울을 봤어요.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서 꼴이 말이 아니었어요. 내가 봐도 내가 너무 초라했어요. 지난번에 본 그 여자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어요.


 보통의 내연녀들 꼴이란 알만하잖아요. 천박한 얼굴에 화려한 옷차림. 그런데 그 여자는 아니었거든요. 단정하게 낮게 묶은 긴 머리에, 심플한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요. 얼굴은 못 봤지만, 뒷모습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남의 남자 꾀어내는 보통의 내연녀 꼴이 아니었거든요.


 반대로 오늘의 난 딱 남편 뺏긴 아줌마처럼 보였어요.


 남편이 사준 투피스를 꺼내 입었어요. 큰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남편이 사 준 옷이었죠. 꼭 근사한 자리에 근사한 모습으로 입고 가려고 아끼고 아꼈는데……


 시내로 나가려고 택시를 탔어요. 그런데 속이 너무 울렁거렸어요. 네, 긴장했었나 봐요. 택시에서 내려걸었어요. 어느 새 벚꽃이 폈더군요. 남편은 벚꽃을 참 좋아했었어요. 나중에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마당에 꼭 벚나무를 심을 거라고 했었는데......


 걸으면서 생각했어요. 그 여자를 만나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 남편은 그럴 리 없다.'


 고고한 척해야 할까. 아니면,


 '언제부터 만난 거냐? 얼마나 깊은 사이냐?'


 하며, 머리채라도 잡아야 할까.


 그 여자를 만나기로는 했지만, 막상 만나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 여자가 다짜고짜 그를 놓아 달라고 하면, 난 뭐라고 해야 할까.'


 덜컥 겁이 났어요.


 '정말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여자가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난 또 뭐라고 해야 할까. 난, 그이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이번에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빨리 도착했어요.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난 출입문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어요. 그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무슨 표정인지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문을 똑바로 못 보겠더라 구요. 시선을 내리 깔고 애꿎은 물 컵만 만졌어요. 그리고 그때 출입문에 달린 방울이 달랑 울렸어요




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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