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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쯔뜨끄 Mar 30. 2016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4)_나

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1)_분홍색 편지봉투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2)_두 개의 같은 상처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3)_그와 벚꽃




 "나랑 있을 때, 그이는 부인과 절대 연락하지 않았어요. 나를 배려한 거겠죠. 덕분에 난 그이와 만나는 동안 부인을 전혀 의식하지 못 했어요. 그냥 그이는 유부남이 아닌, 남자. 내가 사랑하는 남자 일 뿐이니까요. 언젠가 한 번은 보고 싶은 마음에 그이가 살고 있는 동네 근처를 혼자 서성였어요. 그러다 작은 카페에 들어갔는데, 글쎄! 그이가 있는 거예요! 너무 반가워 그이를 부르며 한달음에 달려가 안으려고 했어요. 그럴 수 없었어요. 그곳은 그이가 사는 곳이었고, 혹시라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의식하지 못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냥 돌아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그이가 내 손목을 잡았어요. 놀란 토끼 눈을 했더니, 날 데리고 가 앉더라고요. 이 동네는 어쩐 일이냐, 여기서 뭘 하는 거냐,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이는 나에게 따뜻한 라테 한잔을 건네줬어요. 마치 제가 올 걸 알고 미리 시켜 놨던 것 같이.”


 그녀는 그렁그렁 눈물을 가득 품고 씽긋 웃었다.


 "그 어떤 날 보다 행복했어요. 그런데 그 날, 너무 행복에 겨운 내가 바보같이 실수를 했어요...... 그이의 휴대전화를 몰래 봤어요. 부인과 그이가 주고받은 문자. 휴대전화 가득한 가족사진, 그이를 반 닮은 아이들, 아이들의 나머지 모습을 가진 부인의 웃는 얼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녀는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빠르게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 동안 그녀는 끄윽끄윽 울음소리를 삼켰다. 그녀는 그 날로 돌아간 듯했다. 눈앞에 그 날을 그리 듯 말하던 그녀는, 감정마저 그 날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대답 대신 온몸을 들썩이기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몸은 더 격렬하게 들썩였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온 방을 휘감아 돌다 유리창을 때렸다.


 더 이상 상담이 어려웠다. 간호사를 불러 그녀를 병실로 옮겼다. 그녀에게 진정제를 처방하고, 보호자를 상담실로 불렀다.




4


 고개를 올려 문을 봤는데, 남편이었어요. 남편이 그곳에 왔어요. 난 너무 놀랐어요. 몸을 재빨리 돌렸어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숨으려고 일어나는데, 남편과 눈이 마주쳤어요.


 ……빌어먹을......


 그 여자 짓 일거예요. 그럴 속셈으로 만나자는 내 문자에 냉큼 대답했던 거였어요. 부러 남편과 나를 만나게 할 작정으로. 남편이 내게서 떨어져 나가길 바랐겠죠. 추한 내 모습과 아름다운 자기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주면 남편이 내게 정 떨어질게 뻔하잖아요. 드라마에서 봤어요, 내연녀와 자신 몰래 만나는 본처에게 오히려 모진 말을 던지는 남편들을.


 "여보?"


 남편이 날 불렀어요. 화가 났어요. 다른 여자를 만나러 온 주제에 뻔뻔하게 날 부르다니요.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대답도 하지 않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어요. 창피했어요. 이런 꼴로 이런 장소에서 남편을 만나다니! 더구나 그 여자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어쩌면 어딘가 숨어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 여자는, 그러고도 남을 여자예요, 분명히.


 등 뒤로 남편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어요. 변명을 하려는 거겠죠. 어쩌면 남편은 내가 왜 이곳에 나와있는지 알지도 몰라요. 아니면, 그 여자가 날 만나러 오는 걸 남편이 막았을 지도 몰라요. ‘내가 끝내겠다고.’

택시를 잡으려 힘껏 손을 흔들었어요. 어느새 남편이 따라 나와 내 손목을 잡고 소리쳤어요.


"뭐야!”


 이를 악 물었어요. 저절로 그렇게 됐어요. 남편의 손에 꽉 잡힌 채 하얗게 질려가는 내 손목을 힘껏 빼냈어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머리 속이 텅 비었어요. 온몸에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렸어요. 식은땀이 흘러내렸어요. 길에 서서 남편을 그냥 보고만 있었어요.


 “괜찮아? 나오라고 해놓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해."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꽉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남편이 내 가방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 줬어요. 분홍색 벚꽃이 가득한 손수건이었어요.







 보호자는 내 입만 쳐다봤다. 내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처음 환자와 상담했던 날 보호자는 자기 탓이라며 자책을 하느라 내 말은 듣지도 않았다. 그때와 비교해 보면, 보호자의 반응도 아주 대조적이다. 환자의 상태를 받아들인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환자의 상태를 믿지 못 하고 내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분석해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일까.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환자는 본인 스스로 두 인격과 싸우고 있어요. 아마 내연녀가 정체를 드러내고자 했을 때, 그때부터 스스로 싸움을 시작한 것 같아요. 다른 인격끼리 만나 스스로 소통하려고 했다는 건 아주 중요해요. 때로는 가지고 있는 인격들 간의 소통이 치료에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거든요. 녹취록을 봤을 때, 아직 두 인격이 만난 상태는 아닌 것 같네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두 인격을 불러내는 치료를 하려고 합니다. 아마 힘들 거예요. 그건 환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테니까요."


 보호자는 내 얘기를 듣다 말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연신 자기 손가락만 조물 거리고 있었다. 자기 탓이라는 자책도 없었고, 나에게 거짓말이라며 화를 내지도 않았다.


 "보호자님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셔야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다중인격장애라는 게 불안한 심리가 주 원인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보호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잔뜩 부르튼 입술로 오물오물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더 궁금한 사항이나, 하실 말씀 있으세요?"


 나는 보호자를 보고 잠깐 기다려줬다. 그가 하는 말을 받아 적으려고 오른손에 팬을 쥐었다.


 "아닙니다."


 보호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담실을 나가려 일어섰다. 나는 다음 환자의 차트를 모니터에 띄우고, 책상 위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상담실 밖으로 나가던 보호자는 문을 열기 전 뒤를 돌아 나에게 말했다.


 



"저기...... 내연녀가 이길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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