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쁘쯔뜨끄 Apr 04. 2016

어린날의 클리셰

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누군가는 집으로 갈테고,
몇 몇은 남아 운동장으로 모이겠지.
어디서 만나 뭘 하며 놀자, 딱히 약속 하지는 않아도.항상 그 곳에 가면 너희들이 있었어.

흙 먼지 뿌옇게 이는 학교 운동장에

다 같이 가방은 한쪽에 벗어던져놔.
운동화 질질 끌며 동그라미, 네모, 그림을 그렸어. 모래 운동장 바닥에.
그러면 그 때부터 그 선은 경기장이 되는 거야.
사방뛰기도 했다가,

해바라기도 했다가,

돈까스도 했다가.

웃긴 건 뭐냐면,
그렇게 큰 운동장에서

우리는 우리가 그려 놓은 그 작은 공간에서만

놀았다는 거야.
왜 우리는 그 구석에서, 그 틀 안에서만 놀았을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딱히 뭘 하며 놀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 때의 냄새,

그 날의 웃음 소리,

그 시간이 주는 쾌락만 기억하면 되는거야.
사실 그게 중요한거거든.

아무튼.

사내 아이 하나가 축구공 하나를 가지고 운동장으로 오면,
그 때부터 사내 아이들은 축구를 시작해.
그러면 계집 아이들은 운동장 가로 나와

킥킥거리며 구경을 해.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심심해지면,
개중에 사내다운 면모를 지닌 계집 아이 하나가
축구공을 잡으러 운동장으로 뛰어가.

그 때까지만 해도 그 계집 아이 하나 이길 수 있는 사내 아이가 몇 없었거든.
그러면 다시 사내 아이, 계집 아이 모여서 운동장을 뛰어다녀.

그 때는 그렇게 뛰어도 배가 안고파.
아마, 모래 먼지를 잔뜩 먹어서 일거야.

배가 부르기도 하겠지.

그 곳엔 시계 하나 차고있는 아이가 없어.
그래서 마냥 해가 질 때까지 땀 뻘뻘 흘리며 놀다가,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고,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운동장 구석에 던져놨던 가방을 들어.
가방에 묻은 흙을 대충 손으로 탁탁 털어내고,
누구는 학교 앞 구멍가게로,

누구는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

다함께 모여 시끄럽게 놀다가 갑자기 혼자 집으로 가려니,
그만큼 적막한게 또 없지.

내 덩치보다 큰 가방을 짊어지고,
어깨 축 쳐져서 집으로 걸어가.
자꾸만 흘러 내리는 가방을 고쳐 메고 또 고쳐 메.

애먼 손바닥 탁탁 쳐 가며,
손바닥에 남아 작게 반짝이는 모래를 털어내.
손톱 사이 시커멓게 낀 먼지도 뜯어내고,
콧구멍에 잔뜩 낀 마른 코딱지를 파 내기도 해.
먼지가 묻어 시커먼 코딱지를 파 내서,

바지에 슥슥 닦아 내는 거야.

시원하게 뻥 뚫린 콧구멍으로 바람이 슝 들어오면,
아까 놀았던 운동장 냄새가 나.
그게 좋아서 콧구멍을 더 크게 벌려서
숨을 몇번 더 들이마셔.

자꾸만 흘러내려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기면,
땀이 식으면서 이마에 달라 붙었던 잔 머리카락이 시원하게 떼져.
그리고 고개를 들면,
엄마가 저 만치에서 부르겠지.

밥먹자 빨리와."


현실주의 어른들에 의해 파괴 되어버린

어린날의 클리셰

매거진의 이전글 소나기가 내리는 선택의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