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후끈한 기운만 가득한 개찰구를 지나, 에스컬레이터에 한 발을 올렸다. 훅 하고 흙냄새가 났다. 비가 오려나 보다. 큰일이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엄마가 우산 들고 가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분명 우리는 같은 일기 예보를 봤는데, 엄마는 우산을 챙기라고 하고, 나는 괜찮다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가만, 어제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던가?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하나 살까, 아니면 그냥 뛰어갈까. 출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짧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에스컬레이터가 출구에 다다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하나 툭!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제 막 내리기 시작 한 빗방울은 굵지도 않고, 간격이 빠르게 내리지도 않았다. 둔한 사람이었다면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눈치채지 못 할 정도였다.
‘그냥 가자.’
뛰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비가 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조선 양반처럼 집으로 걸었다. 사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은, 짐짓 점잖은 척 괜찮은 척하는 내 표정과 반대로 발걸음을 점점 빠르게 했다.
모퉁이를 돌아, 골목 초입으로 들어섰다.
후드득 제법 굵은 한 무더기의 비가 쏟아졌다.
“이크”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려나 보다. 홀딱 젖어 버렸다. 아까 한 두 방울 떨어질 때, 뛰었더라면 젖지 않고 집에 도착했을 텐데, 후회해봐야 이미 비는 세게도 쏟아지고 있었다. 팬티까지 젖기 전에 부지런히 뛰었다.
굵은 빗줄기에 앞도 못 보고, 고개는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그냥 바닥만 보고 달렸다. 움푹 파인 도로에 벌써 물 웅덩이가 생겼다. ‘아뿔싸’ 웅덩이에 발이 빠졌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되는 일이 없다.
엄마 말 들을 걸, 아까 뛸 걸, 편의점에서 그냥 우산 하나 살 걸.
왜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어디에 짜증을 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조급하게 뛰던 걸음을 늦췄다.
짜증내면, 뭐하나.
어차피 젖어 버린 거,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비 좀 맞으면 어때.
굵은 빗줄기가 계속 머리로 떨어졌다.비 주제에 더럽게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