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째날, 토토로를 만나 덕을 하나 쌓고오다.
[6박 7일간 여자 혼자 떠난 도쿄 여행기]
ALONE IN THE TOKYO
다섯시 반에 눈을 떴다. 커튼을 활짝 열어 놓고 잠든탓이다. 방으로 아침이 서둘러 들어왔다.
괜찮다.
오늘은 지브리 뮤지엄에 가는 날이다. 벌떡 일어나지도 않고, 괜히 누워 혼자 히죽히죽 거렸다.
창밖을 내다봤다. 아직 이른시간, 출근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서울에서는 챙겨먹지도 않던 아침밥을 여섯시 반이 되자마나 내려가 먹었다. 일본 가정식이 조식으로 나오는 이 호텔은, 뜨끈한 노천 온천도 있다. 최고다. 내 마음이 최고라, 호텔에서 주는 싸구려 공짜 커피도 최고다.
밥도, 온천도 너무 좋은 날이다.
준비하는 동안 지브리 OST를 크게 틀었다.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도쿄역에서 주오선을 타고 한참을 달렸다. 분명 쾌속인데, 꽤 오래걸렸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학교에가는 학생. 서울 지하철과 별 다를 바 없는 아침 모습이지만,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여행에서는 길가의 개똥도 신기해 보인다고. 그 말이 딱 맞는 말임을 실감하며, 자리에 앉지도 않고 문옆에 기대서서 빠르게 눈앞을 지나가는 도쿄를 놓치지 않으려 눈동자를 굴렸다.
높은 빌딩에 화려한 간판은 어느새 낮은 주택단지로 변했고, 물기 가득 먹은 녹색의 나무로 변했다. 도쿄역에서 꽤나 멀리까지 달려왔다. 지하철 안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거의 텅텅 비어 갈 즈음, 미타카 역에 도착했다.
미타카 역에서 나와 표지판을 따라가 보면,
고양이버스 정류장을 만날 수 있다. 보통은 티켓을 구입하는데, 나는 스이카 카드가 있어서 그냥 탔다.
역시 교통카드 충전하길 잘 했다. 서울에서는 버스도 타지 않는다. 멀미가 심한 탓이다. 걸어갈까 했지만, 왠지 조잡한 저 고양이 버스를 타지 않으면, 덕을 쌓지 못 할 것만 같았다.
고양이 버스를 타면, 지브리 뮤지엄까지 금방이다. 한국에서 미리 예매 한 바우처를 직원에게 보여주면 줄도 서지 않고 바로 고고! 들어갈 수 있다.
필름으로 된 입장권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소피 할머니의 장면이 박혀있다며 또 혼자서 히죽히죽. 이제부터 첫 번째 덕을 쌓으려는 나에게는 천국인 그 지브리뮤지엄으로 들어간다며, 맘 속으로 독백도 넣어봤다.
내부사진촬영은 금지다. 꾹꾹참았다. 어글리 코리안, 어글리 코리안, 어글리 코리안. 세번 맘 속으로 외쳐보면, 하지말란 짓은 하지 않게 된다. 애국자가 되고 싶은가 보다.
구석구석 구경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업실에는 레이아웃 초안들이 걸려있었다. 많이. 아주 많이. 한국에서 레이아웃 전시를 한 적이 있다. 그 것과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와 그, 종이 냄새와 느낌들.
몸 속에 점점 일 덕이 쌓여감을 느낀다.
스튜디오 내부 얘기를 하자면 끝도없다.
짧은 애니메이션은 1층에서 시간대 별로 상영해주고, 기념품 샵은 제일 꼭대기에있고. 친구들이 어땠냐 물어보면, 혼자 신나 이것저것 떠들다 결국엔 이렇게 말한다.
"그냥, 한 번 꼭 가봐."
내부 구경을 마치고 나면, 외부를 살살 돌아본다.
토토로의 메이처럼 펌프질을 하는 꼬맹이.
비가 많이 왔다.
뮤지엄에서 혼자 두 시간을 머물렀다. 봤던거 또 보고 또보고. 혼자 오니까, 일정이 자유로워 참 좋다.
키치죠지 역으로 공원을 가로질러 가려던 게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서 포기.
다시 미타카 역으로 걸어가려고 나왔다.
푸르르게 둘러쌓인 뮤지엄. 저런 곳에서 글 쓰고싶다!! 가던 길을 멈추고 또 돌아보며 사진을 찍는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가 보니, 대형 알바생 토토로가 있었다. 가짜 입구에서 알바하는 중이었다.
저렇게 종일 서서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알바.
우리..토토로씨 짠해.
한때, 토토로가 이상형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까지 못 만나봤다. 토토로 같이 우직한 남자.
이런 쓰잘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진짜로 뮤지엄을 나왔다.
비가 그치길 앉아서 기다려본다.
이제 어딜 갈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오늘의 목적은 이 한 곳. 지브리 뮤지엄이었으니까, 다음 일정이 있을리가 없었다. 고민하다가 네일케어를 받아 보기로 했다. 도쿄여행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일본에서 네일아트 받기]
이제 카페 알바도 그만 뒀으니, 손톱에 뭔가 칠해도 괜찮다!
속으로 생각하면서 버킷리스트에 적어뒀었다. 오후는 시부야에 가는걸로 정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신주쿠 역으로 가서, 시부야 행으로 갈아탔다. 번화한 시부야 역도 도쿄역 못지않게상당히 복잡했다. 하지만 괜찮다. 도쿄역만 아니면, 난 길을 잃지 않는다. 괜찮다.
시부야에 왔으니, 하치상을 봐야지. 생각하며 열심히 숫자 8을 찾아 걸었다.
여행내내 서울에 두고 온 우리집 멍멍이 포가 그리웠는데, 하치상 앞에서 그 그리움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보고싶은 우리집 멍멍이 포도 현관에 저러고 앉아 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내게 전해 온 사진 속 멍멍이 포는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서둘러 인증 사진을 찍고 네일샵을 찾아 갔다. 자라 매장 건너편 3층에 있는 Nails gogo!
이미 분홍분홍한 벚꽃은 떨어지고, 물기 가득 머금은 잎만 무성한 때에 나는 "사쿠라 같이 해주세요" 말했다.한시간을 보냈다. 내 손톱에 벚꽃이 피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서울에서도 네일아트를 받아 본 적이 없다. 가뜩이나 처음 받아보는 네일 아트에,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인과 마주 앉아 있으니 어색해서 광대가 떨렸다.
그녀는 얼른 동방신기 얘기를 꺼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이돌을 잘 모른다. 괜히 머쓱할까봐 아는체를 해봤지만, 대화는 이내 단절. 가끔 마주치는 눈에 서로 어색하게 웃기 바빴다.
시부야역 2층짜리 스타벅스로 향했다. 기념으로 모으고 있는 시티 텀블러를 하나 사고, 이층에 자리 잡았다.
한번에 신호가 바뀌어 우르르 사람이 몰려드는 그 광경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창가에 앉아 있었다. 일본인, 중국인, 브라질인, 스페인인, 미국인 그리고 나 한국인.
자리가 없어 서성이는데, 브라질 오빠가 나 앉으라며, 자기들 이제 간다며 선뜻 나에게 양보해줬다. 고맙다고, 잊지 않겠다고, 안그래도 다리가 아프던 참이었다고 유창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눈 인사로 대신했다. 내 마음이 눈을 통해 그에게 닿았기를.
신호가 한번에 바뀌고 사람들이 쏟아지는게 뭔가 중독성있다. 자꾸만 보게된다.
그 사람 속에서 사진을 찍고싶어 내려갔다.
군중 속에 손을 흔들고 있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찍어 줄 사람이 없다. 혼자 여행왔구나, 괜히 이럴 때 실감이 난다.
종일 비를 맞고 다녔더니, 아침에 나올 때의 상콤함이 없어졌다. 다시 일주일 일본 집으로 돌아갔다.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맥주와 함께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도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도쿄여행 둘째날이 갔다.
나에게 혼자 여행이란?
원하는 컨셉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거.
누군가 찍어주면 성에 차지 않고,
삼각대는 무겁다.
찍사가 필요하다.
덧,
지브리 뮤지엄이랑 도쿄역 캐릭터 스트릿에서 사 온 기념품으로, 우리집에 작은 지브리뮤지엄을 꾸며놨다.
한층 더 덕력이 강해 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