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뚜껑_쁘쯔뜨끄와 책 이야기
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민음사)
20대 초반 내 책 읽기의 대부분은 일본 소설과 조선시대사가 점령했었다.
이렇게 글로 쓰고보니, 모순 된 두 종류의 책을 내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20대 초반의 나는 정신 없는 애였지 않나...... 생각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새 책이 재단 신간 기증 도서로 들어왔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에서 광고를 워낙 많이 한 책이라
읽어보고싶었다.
또, 20대 초반 정신없는 나를 이끌어 준 바나나씨가 아니던가.
바빴다.
일이 바쁘고 마음이 바쁘다 보니, 이 얇은 책을 읽을 시간조차 나지않았다.
또, 읽으려고 보니. 8월 15일, 광복절이 아니던가.
맘 속에 있는 묘한, 그 어떤, 막 그런, 애국심이
투영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불끈불끈 솟아 오르는 통에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느정도 일을 다 쳐내고.
주말에 쉴 수 있는 날이 딱! 생겼다.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않고.
자다 일어나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생각하다 마음 아파하다가
또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 책을 읽는.
세상 제일가는 한량의 마음가짐으로 보낸 주말이었다.
딱, 한량이 읽기 좋은 책이다..
큰 사건도 없이 그저그저 무난한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여름이 끝남과 동시에 그 하루하루가 다 소중했음을 깨닫고,
다가오는 가을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본 특유의 잔잔감성을 잔뜩 가진 책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어쩌면.
치정멜로가 들어가 있었을테고,
두 여자 사이의 우정에 금이 갔다가 다시 붙는 일이 있었을테고,
빙수가게가 큰 어려움에 빠졌다가 일어설테고,
대기업의 방해와 학창시절 서로 미워하던 사이가 라이벌로 등장할테고.
역시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그런 큰 사건이 없어 좋다.
사는 게 원래, 그런거 아니야?
라고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말하고싶은 요즘의 나다.
안되는 일 투성이었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일,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 일,
자꾸만 모자란 사람 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라
어쩌면, 일요일 딱 하루 쉬지 않았더라면
연두부 멘탈인 나는 그만 으깨져 버리고 말았을거다.
해결이란 정말 재미있다.
'이제 틀렸네.' 싶을 쯤에는 반드시 찾아온다.
'반드시 어떻게든 될 거야.'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짜내다 보면 전혀 다른 곳에서 불쑥.
아주 어이없이 찾아오는 것인 듯 하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어.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