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
각종 프로그램 티켓은 진작에 다 팔리고 없다. 독서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데 서울국제도서전의 인기는 매년 하늘을 찌른다. 사람이 너무 많은 실내에서는 에너지가 3배로 급속 방전되기 때문에 잘 가지 않는다. 딱 한번 2023년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녀왔다. 좋은 책도 많이 만나고 신선한 체험이었다. 책이 들어찬 넓은 컨벤션 홀에 살짝씩 눈이 돌아있는 멸종위기종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독자들이 은은하게 뿜어내는 광, 아니 열기와 행복이 그 커다란 공간에 가득했다. 나도 덩달아 좋은 기운 많이 받고 책에 대한 애정에도 다시금 불을 지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 번은 못 오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몸도 성치 않은데다 일정상 갈 수도 없다. 대신, 홈페이지 구경을 갔다.
주빈(Guest of Honor) 국이 대만이라니. 아니 그러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대만 감성’이라는 주빈 소개 글과 삽화가 마음에 쏙 든다. 얼마 전 다녀온 대만 여행의 추억이 샘솟는다. 주빈 강연 프로그램에서 반가운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천쉐. 얼마 전 경주 독립책방에서 만난 <오직 쓰기 위하여>라는 에세이를 쓴 대만의 소설가다. 새빨간 표지, 창가에 놓인 쓰는 사람의 책상 사진, 에세이 한 꼭지 한 꼭지가 전부 좋아서 책상 위에 세워두고 매일 보고 있다. ‘한국에 오신 걸 무진장 환영합니다, 작가님.’
매년 도서전은 주제를 정하고 도서 큐레이션을 선보인다. 재작년에는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탈피해 보자는 취지의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는 주제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올해의 주제는 믿을 구석(The Last Resort)이라고 한다. 혼란한 시대를 사는 이들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주제랄까. 큐레이션이 도서전의 엑기스라고 생각한다. 좁은 취향에서 벗어나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다. 직접 가진 못하지만, 이 목록에서 읽고 싶은 책을 찜해두고 야금야금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울 것 같다.
원래 북토크는 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작가는 책이나 글을 통해 만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싶어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 듣는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올해 도서전 작가와의 만남 목록에서 두 명의 예외를 발견했다. 은유 작가와 김주완 기자다. 사회문제에 대해 조금씩이나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은유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다. 그런 책을 쓰는 사람은 어떤 빛을 낼지 궁금하다. 김주완 기자는 <줬으면 그만이지>의 저자이자 다큐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이라 그냥 뵙고 싶다.
도서전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가기 전날에는 숙면을, 입장 전에는 포만감을 두둑하게 챙겨가야 한다. 간식과 물도 준비해서 중간중간 잘 쉬어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지친 몸과 아쉬운 마음 사이에서 상당히 곤란해질 수 있다. 가방은 금세 무거워지기 때문에 보통은 쇼핑백이나 에코백을 더 챙겨 온다. 캐리어를 들고 오는 야무진 이들도 있다. 국내외 많은 출판사가 독자들의 지갑을 털기 위해 부스마다 경쟁이 치열하다. 그만큼 구석구석 볼거리도 다양하다. 독립 출판물도 홀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출판이라는 틀 자체를 확장하고 있는 독창적인 독립 서적들과 아기자기한 디자인 상품들도 많다.
책을 사랑하는 희귀한 종족과 대거 접촉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만약 그 열기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면, 방구석에서 평온하게 홈페이지를 방문해 엄선한 큐레이션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도서전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