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책 제목 <글쓰기 생각쓰기 - 좋은 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작가 이름 윌리엄 진서. '진서? 은서, 민서, 윤서 처럼 2010년 생 사이에서 유행했던 이름 같네.' 첫 장을 펼치니 정부인증(?) 글쓰기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강원국 작가님의 추천사가 이렇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이라면 윌리엄 진서를 모를 리 없다.' 헉.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이 윌리엄 진서였구나.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만난 적 있을 말. 쓰고는 싶은데 쓰지 않던(못했던) 부대끼던 시기에 엄청 힘이 됐던 말이다. 쓰는 사람이 아니었던 시절에도 글쓰기 책은 항상 재밌었다. 정확히 어떤 책에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문장을 읽은 순간의 기분이 떠오른다. 마치 선생님이 내 귀에다 대고 속삭여 주는 듯했다. 그리고 '아이고~ 그런 거죠? 그래서 그런 거였어~.' 하고 크게 안도했다. 작가들의 오랜 글쓰기 스승이라는데 이제야 만났다. 이제라도 만난 게 어딘가. 1975년에 쓰인 이후 여러 번 개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무려 50년 동안이나 수많은 작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계속 써나갈 힘을 줬다고 생각하니 손안에 책이 묵직하다.
두 번째 꼭지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다>의 첫 문장이 명치를 푹 찌른다. "사람들은 대체로 글을 난삽하게 쓰는 병이 있다." 그러곤 몇 페이지 뒤에 "의자에 앉아 책이나 잡지를 들고 조는 사람은 글쓴이 때문에 불필요한 수고를 너무 많이 한 사람"이란다. 초장부터 곧장 어떤 것들을 버려야 하는지 예시를 보여주는데, (고통을) 경험하다 대신 아프다 / 현재, 현시점에, 목하 대신 지금 / 최초보다 처음 / 논의하다 대신 말하다. 이런 식이다.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정확한 어휘를 써야 하지 않나?' 심지어 속으로 '이건 잘 고른 단어의 예시겠지?' 하고 생각한 표현들도 불필요하게 긴, 고쳐야 할 대상이었다. 간소한 단어로 정리하라고 대학에서 가르칠 때 줄을 긋는 대신 괄호를 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간소하게, 부디 간소하게 쓰자."라고 호소한다.
원래 책에서 독자에게 직접 적용해보라며 권하거나, 연습 문제라든지 자가진단 리스트 같은 게 끼어 있어도 절대 하지 않고 넘어간다. 귀찮아서. 오늘은 1부의 2장까지 읽고 벌떡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제 글에 괄호 치기를 해 봤다. 난생처음, 책 읽다 말고 해 보란 대로 해 본 순간이었다. 수정 후 글이 더 나은지, 이게 맞는 수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군더더기가 조금은 덜어진 것 같다. 오늘 글도 내일 또 보면 괄호가 (콸콸) 쏟아지겠지. 다행히도 익힐 수 있다고 하니, 강의실 맨 앞에 바짝 목을 빼고 앉은 열혈 수강생처럼, 진서쌤 말씀을 새겨가며 읽어야겠다.
[수정 중]
어제 글을 쓰느라 펼쳐 (들) 었던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침대(에 가지
고 들어가) 노란 조명 아래서 몇 장 더 읽다 좋아서 접어두고 잤다.
정신없고 삭막한 이 도시에도 의외로 식물이 많다. (아무래도 더 많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맑은 눈으로 찾자면 몇 걸음마다 ‘어? 여기에도?’ 싶을 정도로. 거리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여럿이 혹은 혼자 서 있다.
오늘 (하루가) 힘들었건, 아무 날도 아니었건 간에 (저녁밥 먹을 무렵까지 그럭저럭 지나 보냈다면) 그건 (우리) 주변에 (늘)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 덕일 거다.
“내가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 있는 존재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여도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늘 나를 향(해 있는) 마음들이 있어서 일거다.
[수정 후]
어제 글을 쓰느라 펼친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침대 옆 노란 조명 아래서 몇 장 더 읽다 좋아서 접어두고 잤다.
정신없고 삭막한 이 도시에도 의외로 식물이 많다. 맑은 눈으로 찾자면 몇 걸음마다 '어? 여기에도?' 싶을 정도로. 거리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나무가 여럿이 혹은 혼자 서 있다.
오늘 힘들었건, 아무 날도 아니었건 간에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저녁밥을 먹고 있다면 그건 주변에 있는 나무들 덕일 거다.
"내가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존재들. 내가 어떤 상태여도,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늘 나를 향한 마음들이 있어서 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