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안녕, 나의 선생님>
크기는 엄청난데 풍선처럼 가벼워 보인다. 겨자색 스웨터를 입은, 갈색 단발머리 여자가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있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실제로 봤다면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을 것 같다. 꽃 종류도 다양해서 향기도 예사롭지 않겠다. 잰걸음으로 바닥만 보며 앞서 가느라 못 보고 지나친 사람도 바람에 날아온 향기에 기분 좋아질 듯하다.
경주 그림책 서점 소소밀밀에서 다른 책을 샀는데, 사장님이 같이 챙겨 주신 엽서 일러스트가 이 책 표지였다. 책 내용은 모르고 순전히 표지가 좋아서 사볼까 하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다. 알라딘은 참 일을 잘하기도 하지, 때마침 표지 그림을 손수건으로 제작해 그림책이랑 함께 팔고 있다. 침대 앞 눈 뜨면 바로 보이는 곳에 붙여 두려고 구매했더니 책도 같이 왔다.
책이 오기 전에 그림만 보고,
어쩌면,,, 우리 모두 그림 속 그녀처럼 향기 나는 꽃다발을 안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꽃다발을 저마다 한 아름씩 등에 메고 어깨에 걸치고 태어난 거지. 살면서 얻은 이런저런 경험과 인연까지 하나 둘 얹으니 이제는 더 커진 왕 꽃다발을 안아 들게 된 사람들. 그냥 환하게 웃고만 있으면 존재하는 것 만으로 자기 몫을 다하는 거고 다들 그 모습을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텐데. 뭔가 단단히 착각들을 하고서 엉뚱한 걸 손에 쥐려고 바깥에서 뭔지도 모르는 걸 찾아 헤매는 건가... 하고 잠시 몽상에 빠졌다.
책은 아직은 학생이 없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은 예비 교사(?)가 진짜 선생님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가르칠 아이들을 찾아 세계를 다니다 원래 여행을 시작했던 이유도 잊어버리고 어느새 지친 여행가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한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꿈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만나고 나서야 희미해진 첫 마음을 떠올린다.
현실 속 우리도 자주 꿈을 잊고, 첫 마음을 잊고, 나를 잊고 산다.
인생이 뭐 내가 정한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쳐 허우적대다 지치기도 한다. 하루하루 눈앞의 일을 쳐내며 살다 보면 문득 ‘어떡하다 여기서 이러고 있게 된 거지?’ 싶을 때도 있다.
책 속의 그녀는 인생이 내 맘 같지 않을 때도, 꿈을 잊고 살던 때에도, 발 닿은 장소마다 주어진 순간마다 충실히 보낸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너무 용쓰지 말 걸 그랬다. 힘 빼고 즐겼으면 좋았겠다 싶은 이런 성숙한 생각은 꼭 뒤늦게 든다. 엄한 데를 헤매고 있는 것 같고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그녀의 여정과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이 꽃다발을 떠올리면 조금은 힘이 날 것 같다. 여러모로 어여쁜 책이다.
그림책 <안녕, 나의 선생님> / 사비나 콜로레도 글 / 세레나 마빌리아 그림 / 김여진 옮김 / 펴낸 곳 노는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