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공원
본격 여름이다. 습하고 더워지니 아무래도 산책을 덜 나간다. 마침, 일찍 눈이 떠진 김에 새벽 산책을 나가보자. 밖에는 실비가 내리고 있다.
집 앞 공원 가는 길목에 ‘바람길숲 조성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지 꽤 됐다. 산과 숲의 바람을 도심으로 보내 공기를 순환시킨다고 한다. 이미 있는 나무들 사이사이에 다양한 종류의 풀, 꽃, 키 작은 나무들이 추가 됐다. 식물이 촘촘히 더해지는 게 보기에도 좋은데 미세먼지며 열 식히는 데에도 도움이 되나 보다.
한동안 갖가지 모종들이 트럭에 실려와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대규모 이사 현장 같았는데 이제 얼추 다 심은 것 같다. 아직 한 구석에 잔디 인형처럼 생긴 모종 40~50개가 이슬비를 맞으며 대기 중이다. ‘이사 온 집 앞에 도착한 아이들처럼 신나는 마음일까, 첫 출근을 앞둔 신입 사원의 긴장된 마음일까?'
“식물원이란 공간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이미 존재하던 작품들을 가져다 놓는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 자리를 정하고 식재해 둔 식물들이 자라나 제자리를 알맞게 차지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완성될 수 있지요. 그래서 식물원이 정말 식물원다워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임이랑,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바다출판사
식물에 공들이는 마음이 생활에 녹아있는 게 느껴져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작가는 슬럼프에도 좋은 날에도 식물에서 에너지를 얻어 살아가는, 식물 얘기로 라디오 진행까지 한, 진지한 식집사다. 다른 공간보다 오랜 기다림과 인내가 있어야 완성된다는 걸 새삼스레 인식한 뒤부터 식물원은 아니래도 이사하는 식물을 보면 응원을 보낸다. ‘이제 여기서 사는 거야, 잘 뿌리내리고 즐겁게 지내길 바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가기 전에 운동기구가 모여 있는 작은 운동장을 지난다. 보슬비가 양이 늘어 제법 쏟아지고 있는데도 거기 모인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운동을 계속 한다. 비를 피해 지붕 아래 벤치로 가는 몇몇 할머니들도 호들갑이 없다. 이 쿨한 장면을 글로 쓰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 운동기구 이름을 확인하고 휴대폰에 메모한다.
원 그리기(위아래 손잡이를 잡고 거대한 핸들을 돌리는 기구)
물결 타기(두 발을 모으고 올라서서 경쾌하게 좌우로 흔들어 허리를 푸는 기구)
하늘 걷기 (공중에서 걷듯이 두 발을 앞뒤로 움직이는 기구) + 하늘 걷기는 이용할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오 지 않은 적이 없는, 즉각 기분을 개선해 주는 기구임.
(비 맞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 두 분이 시설 관리하는 젊은이겠거니 하고 무심히 쳐다본다. ‘멋지십니다, 어르신들. 건강하세요.'
도로변 화단에 새로 자리 잡은 식물에 환영 인사를 하며 내려간다. 번잡해지는 구간에는 벌써 목이 꺾인 꽃도 몇 송이 보이고, 담배꽁초도 여러 개 눈에 띈다. 아이고, 누가 남은 음식을 화단에 버렸다. 차마 주울 용기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 걱정만 하면서 지나왔는데 형광 연두색 작업복을 입은 환경미화원이 등장했다. (동생일지도 모르지만) 슈퍼맨 오빠 같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려요.'
큰 도로에 나오니 말 그대로 '가랑비에 옷이 젖은'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비를 맞으면서도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걸 보니 속으로 신경질을 잔뜩 부리고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하면서 페달을 밟고 있을까.'
안개비 덕분에 늘 보던 공원 풍경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운치 있어 보였다. 인적 드문 새벽 공원은 조용했는데 다채로운 새 이웃과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복작대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하니 출출하다. 아침밥이 꿀맛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