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템

윌리엄 진서, <글쓰기 생각쓰기>, 돌베개

by 이파리


‘뭘 말하고 싶은 거지?’ 글밥은 많은데 정돈되지 않은 내가 쓴 글에 대고 종종 따져 묻는다. 진서 쌤(윌리엄 진서)은 무엇을 쓰고 싶던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강조한다. 괄호 치기를 하면서 될 수 있는 한 버리는 연습을 하라고. 인칭 대명사를 정하고 시제와 분위기를 일관되게 선택해 통일성을 지키라고. 범위를 좁혀 작게 생각하고 한 문장에 한 생각만 담으라고. 그런게 좋은 글이라고.


글을 꾸미지 말고 자기 자신이 되라고도 한다. 글 쓰는 행위는 자신을 탐구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이런 과정이 자기 이해를 깊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심리상담과도 맥이 통한다. 내가 놀란 가르침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라’라는 말이었다. 구체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듯 쓰라고 다른 글쓰기 책에서도 배웠고 나도 그래야 한다고 믿어왔다. 진서 쌤은 독자는 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쓰란다. 나만 좋으면 남도 좋아할 테니 아무렇게나 쓰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글 쓰는 사람이 즐겁게 쓰면 독자도 그걸 느낀다는 거다. 나도 종종 작가가 식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때론 얼마나 큰 비애에 잠겨 있는지 함께 경험하곤 하는 걸 떠올려보면 옳으신 말씀이다.


글은 써야 는다.
글쓰기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로 일정한 양을 정기적으로 쓰는 것이다.


첫 번째 100일 글쓰기를 하면서 체감했다. 써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더 말할 것도 없는 진리와도 같은 말이다. 진서 쌤도 글쓰기는 부단한 노력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이라고, 할수록 나아질 거라고 계속 격려한다. 시작과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참신함과 놀라움,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문체를 만들어가는 법 등 다양한 요소에 관한 세세한 안내가 이어진다. 문학으로서의 논픽션,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과학과 기술, 비즈니스, 비평 그리고 유머까지, 각각의 형식에 맞는 다양한 조언이 가득하다.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전부 가르쳐 주려는 열정 가득한 선생이다.


‘과학에 대한 글? 어우 안될 말이지, 알지 못하는 방대한 주제를 조사하고 인터뷰해서 논픽션을 쓴다? 이번 생에는 없을 일이지, 비평은 똑똑한 전문가가 하는 거고.’ 나와는 먼 글쓰기 형식이라고만 생각했던 분야도 진서 쌤의 안내를 따라 조금씩 시도해 본다면 ‘또 모르지 70살쯤에는 쓰고 있을지’ 정도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만사가 그렇지만 빨리, 쉽게, 그리고 연습 없이 얻으려는 요 심보만 없으면 낯선 영역의 글쓰기도 덤벼볼 만한 것이 될 수 있다.


모든 꼭지가 좋았지만, 특히 4부 글쓰기의 자세에 밑줄을 많이 쳤다. 쉬운 단어로 간결하게 쓰라고, 그러면서도 진부한 표현은 최대한 걷어내고 참신하게 써야 한다고. 저자가 말하는 들어내야 하는, 뜻도 부정확하고 진부한 표현은 예를 들면 ‘고위직’ 같은 것이다. 대신 임원, 회장, 사장, 이사, 부장이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단어라고. ‘고위직, 좋은 표현 같은데….’ 혼자 구시렁대면서 머릿속에 메모한다. '쉽고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참신하게.' 글쓰기는 정말로 어렵다.


‘글쓰기는 결정의 연속’이라는 꼭지에서는 저자가 쓴 “팀북투에서 보내는 소식”이라는 여행기를 활용해 족집게 과외를 해준다. 긴 글을 문단 단위로 해부해 각 지점에서 어떤 고민과 선택이 있었는지 보여준다. ‘키아~ 기가 막힌다.’ 감탄하면서 원문을 읽었는데(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뒤이어 나오는 설명 부분에서 ‘어 그런 표현이 있었나?’ 하고 되돌아간 적이 많았다. '너무 좋다'하고 읽는 와중에도 슥슥 대강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니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내가 힘들게 썼으니 독자가 단어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남이 쓴 글은 잘도 띄엄띄엄 건너뛰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 요점은 인간미와 온기라고 한다. 온기 가득한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기 다운 글을 쓰면 된다고.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해 글을 써라고. 새로이 배운 것도 많고 다르게 보게 된 것도 많다. 50년 전에 나온 책인데 방금 나온 책같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라 오래 곁에 두고 자주 찾을 평생템이다. 읽다보면 글쓰기 뿐 아니라 자기이해와도 맞닿아 있어 자기돌봄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진서쌤이 읽었다면 괄호로 가득찼을 이 난삽하고 장황한 글도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가훈으로 삼을만한 쌤의 말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스스로에게 시동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이들이(유명한 작가들) 자리에 앉기만 하면 글이 술술 나오는 줄 안다. 아무도 매일 아침 그들이 시동을 걸기 위해 쏟는 노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도 시동을 걸어야 한다.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벽 산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