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과 몰입
요즘, 느낄 때마다 기분 좋은 두 가지 순간이 있다. 하나는, 침이 나오는 걸 감지했을 때이다. 나도 모르게 입이 살짝, 아주 살짝 벌어진 틈으로 침이 약간 흐르고 있는데 모르고 있다가 슬며시 타액의 움직임을 알아차렸을 때. 긴장 풀고 편히 있었다는 게 마음에 든다. 소파에 누워 책 읽다가 눈이 살살 감길 때나, 한 상자 주문한 당근을 한 개씩 솔로 씻고 물기를 닦고 지퍼백에 담아 냉장고에 넣을 때다. 잡생각 없이 단순 반복 작업을 하다가 종종 느낀다.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증상(?) 일 수도 있지만 (선배님들, 그런가요?) 그런 거래도 좋다. 꽉 깨문 어금니나 쭉 내민 입술, 잔뜩 힘을 줘 팔자 주름은 찐해지고 입 주변 근육까지 쭈글쭈글한 (대게는 미간까지 찡그린) 얼굴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았을 거다. 그 시간을 떠올리면 좀 더러워도 침 흘리는 내가 훨씬 낫다. 사실 더러울 것도 없다. 24시간 입안에 머금고 있는 건데.
다른 하나는, ‘어? 지금 몇 시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하고 문득 생각할 때이다. 그리고 더듬더듬 되감기를 해보면 어림짐작은 되지만 퍼뜩 떠오르지는 않을 때다. 시간 감각을 붙들지 않은 채 몰입한 상태였다는 걸 인지하면 흡족하다. 그건 재밌는 책을 읽고 있던 얼마간일 수도 있다. 아니면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 사이에 수납 상자를 놓고 잡동사니를 정리한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
안 그래도 될 때도 괜히 시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마음은 주로 과거나 미래 어딘가에 가 있는 상태가 기본값이었다. 시간은 효율적으로 써서 뭔가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어떤 기한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시간을 의식하며 지낼 때가 더 많지만, 시간을 잊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생겨서 기쁘다. 이제라도 그렇게 지금을 보낼 때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예전에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건 할 일 목록을 써나가고 지워나가는 일이었다. 배울 기회, 교류의 장, 새로운 경험과 영감을 주는 공간, 의무를 다하기 위해 참석하는 행사 등으로 캘린더도 가득 채웠다. 되도록 정신없는 매일을 성벽처럼 쌓았다. 꽉꽉 찬 목록과 달력만으로도 꽤 유능한 사람 같고 성취감도 느꼈던 것 같다. 끝마친 일에 줄을 그을 때는 힘들고 지쳤을 때가 많았지만 만족감도 없진 않았다. 다만 오래가지 않고 금세 휘발됐다.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못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끝없이 동력을 제공했다. 안 그러면 가만한 시간에 앉아 공허감이나 두려움 슬픔이나 불안을 마주해야 하니까. 그때는 몰랐지만, 더 밑에는 아마 이런 것들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거다.
상당한 극복을 이루고 한층 성장한 것처럼 썼지만 지금도 예전 같은 상태일 때가 여전히 많다. 힘 빼고 (침은 안 흘리더라도) 지금 여기에 있으면 글쓰기도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오늘, 이 글을 쓰기까지, 진서 쌤(윌리엄 진서)의 표현으로, 시동을 걸기까지 무척 오래 걸렸다. 안 쓰고 한참 책을 봤다. 급하지 않은 집안일을 하고 안 궁금한 것들을 검색했다. 편히 노는 거라고, 쉬는 중이라고, 좋아하는 독서 활동 중이라고 해봤자 사실이 아니다. 이완과 몰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글쓰기는 시작이 힘들다. 그래서 미루면서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
걸라는 시동은 안 걸고 차 문은 활짝 열어둔 채 괜히 주변을 둘러보고 창문도 소매로 슥슥 닦는 운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괜히 한 바퀴 빙 돌면서 차를 살펴본다. 긁힌 자국은 없는지 찌그러지거나 녹슨 데는 없는지. 그러고도 운전석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한 발은 차밖에 둔 채 차 키를 조몰락대고 있다. 핸들을 손에 쥐었다 폈다 하며 도로를 응시하고 있을 뿐 시동 걸기는 미루는 중이다. 흐뭇한 순간은 짧고 시동 걸기는 온종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