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무더위, 이슬아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이야기장수

by 이파리

더운 건 힘들다. 추운 것도 힘들다. 춥다가 더운 거보다 덥다가 추운 게 훨씬 힘들다. 여름이 그래서 무섭다. 밖은 숨도 못 쉬게 푹푹 찌는 찜통인데 안은 냉동 창고 마냥 추워 병이 난다. 올해는 냉방병을 무찌를 수 있을까, 아니면 물리치기라도.


여름을 맞이하는 내 마음은 비장하다. 작년 여름에도 비슷하게 비장했다. 그때 시로써(!) 여름을 끌어안아 보겠다며, (시를 읽지 못하는 병을 자가 치유하겠다는 병이 도져서) 교보문고 여름 시집 큐레이션 중에 몇 권을 샀다. 안 읽고 한 해를 보냈더니 죽지도 않고 다시 여름이 왔다. 한 권을 꺼내 보았다. 책 표지만큼은 가히 여름책이라 부를 만하다. 한강 작가님의 시집이 하도 시렸어서, 초록초록한 풍경에 바람이 부는 듯한 제목과 표지에도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집 뒷면에 이제니 시인이 쓴 추천사가 있다. 슬픔 슬픔 겨우 연민 슬픔 섬세 이런 단어들이 보인다. 연달은 슬픔에 때려 맞고 싶진 않다. 강력한 여름에 대항하는 자로서 나는 지금 청량음료 같은 산뜻하고 싱그러운 느낌을 원한다.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를 집어 들었다.


'막 엄청나게 통통 튀고 그러진 않네? 으리으리하게 참신하다고 할 수 있나?' 어떻게든 별로라고 깎아내린다. 이슬아 작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잘 나가는 유명작가라는 것 말고는. 버텨보려 했지만 사실은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이미 항복한 지 오래다.


"재밌네"


육성으로 웃음이 새어 나와 버린 사고 이후 크크크크 낄낄낄낄 하면서 읽었다. 귀엽고 웃긴 가족 회사 이야기이자 무거운 책임감을 견디기 위해 똑 부러지는 자기 절제를 실천하는 가녀장의 이야기이다. 옛날 어릴 때 친척모임도 생각나고 엄마아빠 젊은 시절 얘기도 생각난다. 뜨끈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냥 처음부터 좋아하지, 뭘 또 그렇게 샘이 나서는 시간 낭비를 하고 그러시나.' 질투심 많은 에고(ego)를 쓰담아 주었다. 청량한 목 넘김이 좋다. 시원하고 산뜻하다. 상큼 깔끔하다. 더운 여름에 딱이다.


캐럴라인 냅은 <명랑한 은둔자>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그녀의 경우 주로 아버지에게) 러브레터를 몇 꼭지 써 보냈다. 그걸 읽으며 이미 70대가 된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나도 언젠가 더 늦기 전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슬아 작가는 (아직 젊으신) 모부에게 고맙다고 존경한다고 사랑한다고 책 한 권을 들여 썼다. 낮잠 출판사의 직원이자 가녀장의 모부인 복희 씨랑 웅이 씨는 글도 안 쓰고 책도 안 읽는다. 근데 사는 게 은근히 멋있다.


"이슬아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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