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왔다

소마이 신지 감독, 영화 <태풍클럽>

by 이파리

첫 장면. 밤. 텅 빈 실외 수영장.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이 춤을 춘다. '난 저래본 적 있나…. 없는 것 같은데, 왜 없나...' 하면서 그 자유로움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작은 나무 책걸상에 앉은 교복 입은 아이들. '부럽다.' 그 부러움의 정도가 진해서 흠칫 놀랐다. 이제 진짜로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 예쁜 나이의 해맑은 아이들과 슴슴한 시골 풍경 모두 아름답기만 한데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뭔가 사달이 날 것 같다. 명랑한 음악과 발랄한 아이들. 아이들의 속사정을 알기 전이라 춤은 신나 보인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겠지만, 그래, 일단은 마구 춰라.'

태풍이나 왔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 마음에는 진짜 태풍이 일고 있는 나이. 영화는 70~80년대 일본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잔잔하게 시작한 영화는 태풍이 몰려오고 아이들이 학교에 갇히면서 놀라운 전개가 휘몰아친다.

처음에는 ‘왜들 저렇게까지 이상해졌나’ 싶었다. 차차 아이들의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아, 그렇지. 제정신으로 사는 게 어렵지.' 하고 아이들만 느끼는 건 아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사랑하고 그립고 두렵고 화나는 그 모든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심정. 그런 마음 들 수 있다고, 그럴 땐 이렇게 하면 조금은 도움이 된다고, 너무 강렬해 죽을 것만 같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치 태풍이 그렇듯 잦아들고 지나간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없다. 말해주지 않아도 어른들 사는 모습을 보면 배울 수 있는데, 그런 어른도 보이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삼각뿔의 변 중에 어느 변이 가장 길겠냐는 그런 것만 묻는다. ‘중학생들만의 상황이랄 수 있나’ 하고 생각했다.


가장 덜 미쳐있던 (그렇게 보였던) 남자 주인공이 보여준 마무리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미치지 않아서 미쳐버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이상한 세상. 부재하거나 무기력하게 그려진 어른들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각자 나름대로 사는 법을 찾아야 하는 아이들은 혼란하기만 하다. 때마침 꼭 자기들 마음 같은 태풍도 왔겠다, 폭우에 모든 감정과 욕구를 폭발시킨다.

감독의 의도는 알겠다(내 나름의 이해일지라도). 그래서 다 보고 나서 좋았냐 하면 뭔가 찜찜했다. 뭐가 불편한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이 불편감마저도 감독은 예견했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감상과 영화 정보는 찾아보지 않고 며칠 마음 한 구석에 묵혀 두었다. 현실의 아역 배우들이 염려됐던 것 같다. 불안정한 감정이 표출되는 장면이 많았던 만큼 그로 인한 영향이 어땠을지 걱정이 됐다. 극 중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극히 어른의 시선이라고 느껴져 그점도 거북했던 것 같다. 청소년들이 만든 청소년 영화였다면, 그들의 시선으로 표현한 장면이었다면, 그들의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였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며칠을 더 곱씹어 보았다. 그러자 광기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었던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영화 보는 중에 '어이구야' 하면서 봤던 일탈의 장면들과 첫 장면을 떠올려 봤다. 영화에 나온 희미했던 어른들보다 어쩌면 더 괜찮은 성인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감독의 다른 작품 <이사>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던데 찾아볼 듯하다. 태풍은 우리 어른들 앞에도 이따금 당도한다. 살다가 때때로 태풍과 마주하면 빗속으로 뛰어들자. 피하지 말고 몸이 다 젖도록 춤도 춰보자. 진흙탕에 머리를 거꾸로 박고 싶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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