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잼, <Not Perfect. Not a Fail.>
친정 식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완전체로 모이지 못해 아쉬웠지만 7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으니 좁은 거실이 꽉 찼다. 부모님 두 분 사시기에 딱 적당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할머니까지 다섯 식구가 수십 년을 같이 살던 집이다. 좁다고 생각 못하고 살았던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제사 지낼 때 쓰는 4인용 체리색 접이식 교자상을 두 개 펴서 붙였다. 저녁 내내 앉은뱅이 제사상 주위를 이탈하는 사람 하나 없이 쉴 새 없이 수다가 이어졌다. 큰 조카가 웃으며 물은 적이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왜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늘 그렇듯, 그간 나누지 못한 놀림거리를 공유하고 서로의 만행을 폭로하는 앞담화의 향연.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언니가 요즘 성질을 많이 낸다는 형부와 조카의 제보를 듣고, 장인어른이 근엄하게 한 말씀.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어." 당사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호쾌하게 웃었다. 조카에게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인 엄마 아빠의 과거사 및 최신 근황도 예외 없이 빵빵 터지는 안줏거리다. 엄마는 아빠가 요즘 생전 안 하던 쇼핑에 빠져서 다이소에서 얄궂은 물건들을 자꾸 산다고 했다. 그래도 다이소 가서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그 와중에 해맑게 방에서 물건들을 꺼내와 자랑하는 아빠. 그런 아빠와 극적 대비를 이루는, 결혼 전에 엄마에게 썼던 오글거리는 연애편지 문구가 등장해 박장대소했다. 그때는 저렇지 않았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은빛 머리가 된 아빠의 그 시절 애인.
언니가 흉보는 주요 대상은 만행을 일삼는 중3 조카이지만 그걸 듣고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재밌다고 웃고 잔소리나 훈화 말씀은 안 한다. 이 집에서는 권위보다는 재미다. 웃겼으면 그걸로 된 거다. 나는 "이모는 네가 행복했으면 그걸로 됐다" 하고, 신나게 조카 편을 들었다. 오래되고 좁은 집에서 가끔 있는 조촐한 식사 자리가 10대 조카들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겠지 생각 하면 행복해진다. 내년에 큰 조카가 고등학교에 가고 둘째까지 중학생이 된다. 학원 스케줄이며 친구와의 약속으로 바쁘신 몸이 되어 얼굴 보기 힘들 수 있겠지만, 외갓집 모임은 재밌으니까 가고 싶다면서 따라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잼님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우리 가족이 떠오르는 일러스트를 봤다. 조카에게 말한 적 있듯, 사소한 일로 투닥대는 게 사이좋은 부부이고, 엉망진창이었던 일상을 허물없이 나누고 눈물 나게 웃고 배를 쥐고 깔깔대면서 흘려보내는 게 가족인 것 같다. 지지리도 안 맞는 제각각인 서로가 서로를 놓지 않고 끌어안고 부대끼며 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닌가 싶다. 깔끔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맛도 좋고 매력 있는 터질랑 말랑 하는 김밥 꼬다리가 그 자체로 좋은 것처럼.
*출처: KIM JAM - 일러스트레이터김잼. https://blog.naver.com/null_object/223912414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