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스콜레생보겐

글, 그림 이한나,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독립출판물

by 이파리


파랗고 얇은 책등이 눈에 띄어 꺼내 보았다.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인데 이 책은 기억난다. 어디에서 샀는지, 그날 현장 분위기와 판매자의 애정 어린 책 소개도.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리틀 프레스 페어, 호기심에 처음 가본 독립 출판물 페어였다. 몰 구석 1층 2층에 작고 아기자기한 부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기가 쓴 책을 직접 설명하고 판매하는 작가들과 선물을 받은 사람 같던 독자들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독창적이고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과 사진, 굿즈도 많았고, 파격적인 구성의 책도 많아 몇 바퀴 돌며 구경했었다. 규모 있는 도서전과는 또 다른 특유의 생기가 있는 곳이었다.


책은 작가가 덴마크에 있는 성인들을 위한 학교, 폴케호이스콜레에서 보낸 1년과 그 후를 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수업도 듣고, 수업 시간보다 더 많은 자유 시간을 어울려 놀고 먹고 춤추고 노래하는 커리큘럼이라고 한다. 덴마크 사람들 책꽂이에 한 권쯤 있다는 푸른색의 호이스콜레생보겐 - 호이스콜레 노래책. 잘 알려진 팝송과 덴마크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이 실린 모음집으로 덴마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모든 세대가 어우러져 쉽게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 책이 국민템이라는 게 놀랍다. 덴마크에 좋은 날도 슬픈 날도 함께 모여 노래 부르는 문화가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시험과 경쟁 없이, 나를 알아가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학교.”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높은 교육열, K-wave, 문화강국, Dynamic Korea. 화려한 간판 뒤에는 나이 불문하고 만연한 번아웃 증후군과 ‘20년간 OECD 자살률 1위’라는 그림자가 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전속력으로 달리기 바쁜 우리와 달리, 행복지수 1, 2위를 오래 지켜온 휘게*의 나라 덴마크. 175년이 넘은 이 특별한 학교에서 자주 함께 모여 합창을 했던 시간이 작가는 참 좋았나 보다. '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이 너무 예쁘다. 혼자 이걸 만드는 게 얼마나 수고로웠을지. 만듦새를 보니 그녀의 정성과 진심이 전해진다.


작가는 한국에 돌아와 대안학교에서 '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녀는 폴케호이스콜레에 다녀온 소감으로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게, 그리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혜를 배웠다"라고 했다. 덴마크에 가지 않아도, 1년을 비우고 떠나 있지 않아도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연결감을 느끼고 한데 어우러져 행복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함께 노래하기는 좋은 아이디어 같다. 우리는 또 가무에 능한 민족이니까. 올겨울 거리에 응원봉을 들고 떼창 하던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다. 시위 말고, 모여 노래하는 게 일상이고 자연스러운 공동체가 되면 어떨까. 숨통이 좀 트이지 않을까.


시 특강도 신청하고 도서전에 독립 출판물 페어까지 갔다니. 2023년에 글쓰기에 대한 열의가 휘몰아쳤나 보다. 정작 글은 쓰지 않고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는 좋은 파도가 와도 때려 맞고 정신없이 휩쓸려 떠밀려 간다. 그때의 일기를 찾아보면 달뜨고 혼란한 마음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돌아보며 그때의 나를 더 이해하게 된다.


올해는 행사가 없나 하고 찾아보니, 올해는 무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최대 규모의 독립 출판물 페어가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2025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10월 17~19일, 3일간 열린다. 개성 넘치는 독립 출판의 바다에서 신선한 영감도 얻고 에너지 넘치는 창작자들로부터 자극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즐겁고 볼거리가 많다. 덴마크는 못 가도 10월에 페어에는 가봐야겠다. 이번에는 파도를 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독립 출판물도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받아 출판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도서 번호가 없다. 대형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아 더 많은 독자가 찾지 못하는 게 아쉽다. 독립 출판물을 다루는 책방에서 만나볼 수 있다.)




* 휘게(덴마크어·노르웨이어: hygge)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명사.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휘게라는 단어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삶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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