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

서울에서 세계여행

by 이파리


두바이 레스토랑에 다녀왔다. 서울 이태원에 있다. 일요일 낮 기온이 38도였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걷는 7분도 몸에 무리가 될 만한 날씨라 택시를 탔다. 창가 자리에 앉으면서 밖을 보더니 신랑이 날씨랑 딱 맞는 메뉴 선정이라고 했다. 거리가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두바이 날씨를 검색해 봤다. 두바이 현재 기온 35도. 중동 날씨가 별거 아닌 건지, 우리나라 날씨가 별스러워진 건지. 며칠 전 별다른 이유 없이 떠오른 아이디어였는데, 뜨거운 날이 이어지니 나도 모르게 사막을 연상한 건가.

식당 내부는 생각보다 널찍했다. 내부는 중동스러운 황금빛으로 꾸며져 있었다. 중동에는 가 본 적 없지만 꼭 이게 그곳 바이브일 것 같다. 많지는 않았으나 아랍 글자도 보였는데 지렁이 같기도 하고 상형문자 같기도 했다. 신비로워 보여서 계속 보니 사막의 아지랑이를 닮은 듯도 했다. 홀의 절반은 투명한 유리문으로 구분되어 있고, 안쪽은 흡연석이었다. 안에서는 식사하면서 시샤(물담배)를 피운다고 어느 블로그 글에서 봤다. 단체 손님용 긴 테이블이 많았다.

해외 어느 도시에 한식당이 생기면 한인들이 모이듯, 우리나라에 사는 중동인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겠구나 싶었다. 오늘은 손님이 많지 않아 한산했지만 모임 날과 겹쳤다면 독특한 장면 속에서 밥을 먹었을지도. 어두운 피부색에 짙은 이목구비의 외지 사람들이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서로 반기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고향 얘기도 하고 힘든 한국살이의 고충과 정보도 나누겠지. 한국인들 얘기도 편히 실컷 하려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흉을 보거나 따뜻한 정을 느낀 경험이라거나.


누구나 숨 쉴 곳이 필요하지. 타지에 사는 우리에게도, 곁에 사는 이주민들에게도 타향살이해나갈 힘을 얻는 아지트가 있다면 조금 낫겠지. 내국인은 낯선 감각을, 중동인은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라니. 새삼 묘했다. 그들의 문자에서 느낀 것과 같은 이색적인 감각이 좋았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조리된 할랄식이라 중동인 뿐 아니라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무슬림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요즘은 내국인도 찾는 맛집이다. 우리 부부는 원래 양고기를 종종 즐겼는데, 지금은 나에게 (지연성)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재료 중 하나라 피하고 있다.


대표 메뉴인 양은 다음에 맛보기로 하고 대신 생선요리와 치킨 만디(길쭉한 쌀을 포슬포슬하게 볶은밥과 구운 닭고기)를 시켰다. 우리가 늘 먹는 김치처럼 중동 식탁에 항상 오른다는 병아리콩으로 만든 찍어 먹는 되직한 소스인 아이보리색 후무스와, 인도 식당에서 많이 먹어 본 난(발효된 밀가루로 납작하고 얇게 구워낸 빵)과 티볼리 샐러드(파슬리와 토마토, 쿠스쿠스)를 시켰다. 파슬리는 촙촙 다져서 완성된 요리 위에 살짝 올리거나 가루 형태로 뿌려서만 먹어봤지, 샐러드로는 처음이었다. 맛이 좋고 다른 음식과 잘 어울렸다.

이국적인 공간의 정취와 향신료 냄새만으로 혹독한 날씨와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맛도 좋고 기분 전환도 되는, 무더운 날씨에 할 수 있는 괜찮은 나들이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름휴가는 여행이었는데 이제는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을 찾아 이동하는, 필요로 다가온다. 여름은 한동안 이어질 테고 우리 부부는 선선해질 때까지 어디 갈 계획이 없다. 8월에도 종종 세계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피서를 가야겠다. 우선 오늘 아침은 소고기미역국에 밥부터 말아먹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I'll be missing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