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다빈치
해변에서건 방에서건 숲에서건 봄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간에, 물고기랑 새, 게, 닭과 함께든 네 식구끼리만이든 온통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찰싹 달라붙어 피부를 맞대고 좁은 방에 꽉 차게 구겨져 있어도 마냥 좋은지 모두 웃상이다. 그러나 화가의 시선에서 행복만이 아니라 그리움과 애틋함이 묻어나 서글퍼지기도 하는 묘한 그림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1916-1956)>은 일본인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 아내가 화가에게 쓴 답장, 그리고 주요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나의 귀엽고 소중한 남덕 군”은 평범한 편이고, “내 마음을 끝없이 행복으로 채워주는 오직 하나의 천사, 나의 남덕군”, “나의 최고 최대 최미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오직 하나인 현처 남덕군” 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이중섭의 편지는 애절함과 순수함 그 자체인 러브레터. 얼마나 그리운지, 나의 사랑과 우리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 만나면 어떻게 사랑할지 이야기하는 편지를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씩 쓴다. 당신도 매일 편지를 보내달라고, 최소 이틀에 한 번은 받아보고 싶다는 식으로, 아주 구체적인 요청도 자주 한다.
이런 청순한 야수가 다 있나. 무슨 야수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스밍 총공(팬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집중적으로 스트리밍 하여 순위에 올리는 총공격을 뜻함) 하듯 하나. 더하지는 않지만, 아내도 화가의 편지에 긴긴 답장을 쓴다. 몸이 아픈 데도 쓰고 바쁜데도 화답한다.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사랑이 넘쳤으나 종이가 떨어져 그림은 다음에 그려서 보내주겠다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자전거를 사주겠다, 선물 많이 사서 가겠다는 공수표도 많이 날린다. 애잔하다.
이중섭은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신혼 초까지는 여유롭게 생활했다고 한다. 1950년 6.25 전쟁으로 피난길에 오르면서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쳤지만, 곤궁한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가족이 같이 살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림은 호평을 받았지만 미술 시장이 없다시피 한 시절이다 보니 돈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생과 예술이 일치하는, 온전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며칠 굶는 일이 허다했지만 작업을 손에서 놓지는 않았고, 종이며 물감 살 돈도 없던 피난 시절에도 재료를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유명한 소 그림에서는 강인한 생의 의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고, 아이들과 아내가 등장하는 그림은 사랑스럽고 천진하다. 그림체는 또 얼마나 모던한지. 환상의 세계에서 반 물고기 반 소와 뒤엉켜 놀기도 하고, 마치 커다란 서예 붓으로 그린 듯한 하얗고 검은 굵은 선은 힘차면서도 부드럽다. 1916년에 태어난 조상님이지만 작품은 세련된 느낌을 준다.
화가의 자필 편지만으로는 알 수 없는 그의 다른 면에 대해 절친인 시인 구상이 설명을 더한다.
중섭에게 있어 그림은 그의 생존과 생활과 생애의 전부였다. 아니 그의 죽음까지도 그림에 대한 순도(바른 도리)였다.
중섭은 쾌쾌히 말해 천재로서 시적인 미와 황소 같은 화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용출하는 사랑의 소유자였다.
이중섭이 늘 신세를 지던 지기. 처자식을 일본에 보내고 외로이 생활하던 이중섭의 눈에 비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구상네 가족>의 주인공이다. 시인이 곁에서 지켜본 이중섭은 천진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누구보다 사리나 사물을 파악하고 있었고 세상 물정이나 인정 기미에도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라는 말은 의외였다. 예술에만 몰두하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순진한 사람일 것 같다는, 예술가에 대한 나의 얄팍한 선입견은 그 두께가 두텁다.
말년에는 음식을 거부하고 가족과의 연락도 끊었으며, 아내의 편지도 반송하라고 했다는 대목에서 그가 느꼈을 자신과 세상에 대한 절망의 크기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나 보다 하고 짐작해 보았다.
현실적 불행을 남에게 돌리고 세상이나 사회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무능과 무력과 불성실로 돌리고 자책에 나아간 것이었다. (중략) 병적이었다고밖에 달리 표현 못하지만 완강한 자기 진실이 아닐 수 없었고, 또 외길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점차 정신과 육체가 무너져 내렸던 것 같다, 아니 스스로 무너트린 걸까.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랑꾼으로서도, 예술가로서도, 한 명의 진실한 인간으로서도.
현실은 비극이었지만 자기만의 예술을 추구하고 원 없이 사랑한 시간을 생각하면 그를 비극적 삶을 살다 간 천재라고 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미와 방향을 잃고 결핍의 결핍으로 인해 홀로 어두운 마음속으로 가라앉는 현대인들과 비교한다면.
김환기의 책이 화가의 인생을 훑으며 화가와 작품을 전체적으로 자세히 보여줬다면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은 화가의 한 때 심정을 현미경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래서 편지를 좋아한다. 특히 옛사람들의 서신이 그렇다. 이 책은 사실 그림을 보고 싶었다거나 화가에 대해 궁금했다기보다 편지 모음이라고 해서 샀었다. 한창 서한집에 꽂혔을 때 사두고 묵혀둔 책이었다. 순수한 야수의 세레나데는 앞으로도 종종 꺼내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출처: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다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