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다

들라크루아 전시와 붉은 달

by 이파리


일요일에 삼성역에서 하는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에 다녀왔다. 전시 마지막 날이었는데, 게으름 부리지 않고 다녀와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그림이 참 사랑스러웠다. 그가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대부분이 90대에 그린 작품들이었는데 그림을 보고 왔다기보다 한 사람을 만나고 온 기분이었다. 옛 파리의 사랑스러운 풍경들이 떠올라 그리기 시작했다던 천생 화가. 그는 그림에, 파리에, 그리고 사람들에 진심인 사람 같았다. 그저 자기 자신인 한 존재를 만난 시간이었다. 10대 때 그림을 배워 올해로 93세인 화가는 80년을 그렸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또 화가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침마다 작업실로 가 앉아 붓을 들고 흰 캔버스 위에 석석 색을 칠한다. 매일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오늘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는 모른다고 했다. 마음 가는 대로 이색 저색 캔버스를 채우며 발견해 가는 방식으로 작업하나 보다.


오늘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 모른 채로 매일 작업실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그 마음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자세구나 싶었다. 뭘 쓰려는 건지 알고 써야 하는 줄 알고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몰라도 하얗게 비어있는 문서 파일을 열고 앉아 글을 쓰면 되는 거였는데. 80년을 그려온 화가가 그렇게 하듯. 80년을 하고도 다음 생에도 또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이어 나가는 그처럼. 잘 그리려고 하지도 않고 결과도 평가도 개의치 않고 그리듯이.


없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넘치게 많이 가졌다. 물건도 인연도 기회도. 아무리 가져도, 더 가질 수 있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법을 잊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 같은, 돌아갈 집이 없는 고아가 된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매일 쓰는 행위와 쓰는 시간, 그 과정과 경험 자체가 마음이 찾아 헤매는 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시간을 쌓지 않고 마음은 헤맴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월요일은 개기월식으로 blood full moon이라 불리는 붉은 달이 뜨는 날이었다. 그걸 보면 뭔가 다른 내가 될까 하는 기대로 신랑이랑 같이 새벽에 옥상에 올라갔다. 1분 남짓? 불그스레한 손톱 모양의 달을 흐릿하게 본 뒤로는 구름이 지나가는 바람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붉은 달은 거기에 붉게 있고, 우리는 시간에 맞춰 일어났고, 옥상은 달 보기에 최적의 위치였지만 구름이 지나가니 볼 수 없었다. 우리 마음과는 무관하게 구름은 무심히 지나며 달을 가렸다. 우리 입장에서나 달을 가린 거지 구름은 그냥 지나는 중이었다. 우리의 바람과 우리의 준비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구나 싶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구름은 구름의 일을, 달은 달의 일을 했을 뿐. 그 현상들이 겹쳐 보이자 달을 못 본 ‘일이 일어난’ 듯했고, 우리는 그것을 불운이라 해석하고 아쉬워했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 보니, 불운도 아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그스레한 달을 초반에는 보았으니 아예 못 본 건도 아니었다. 세상만사 우리가 원한대로 돼야 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고 준비했으면 그에 맞는 결과가 주어지는 게 당연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늘 매사 그러기를 바라고 살았다는 걸 알겠다. 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없고 황당한 태도지만 한 순간도 빠짐없이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다. 나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보면 불운도 있고 행운도 있고 잘된 일 잘못된 일도 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없이 세상은 세상의 흐름대로 흐르고 있다. 그걸 모르고 끙끙대고 부들부들 떨며 왜 내 뜻대로 돌아가질 않느냐고 분해하고 살았다.


전시장에서 나오면서, 멀리 파리 도심이 보이고 그믐달이 비추는 언덕 위 풍경이 그려진 노트 하나를 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화가가 전해준 마음을 금세 또 잊을 거다. 이 노트를 다음 일기장으로 써야지. 이 일기장에는 화가가 그저 그리듯, 그저 살고 있는 이야기가 쓰였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원하고 지금과는 다르기를 바라지 않고,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님을 기억하며 사는 이야기. 사랑하는 파리와 그곳 사람들을 그렸던 화가처럼, 매일 그 시간의 행복을, 지금 이순간에도 누리고 있는 그처럼. 이 글이 일기인지 에세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쓰지 않는 나보다는 쓰고 난 후의 내가 더 좋다. 더 나다운 것 같다. 왠지 조금 울컥한 마음이다. 울 정도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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