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옥남, 양철북
작가는 양양에서 농사짓고 나물 캐고 사는 97세 이옥남 할머니다. 도라지 팔아 산 공책에 쓴 일기 중 151편을 엮어 책으로 낸 사람은 외손자 탁동철 씨다. 글자 연습한 걸 가지고 '손주가 일기라고 소문을 내’ 책이 나왔다며 민망하다던 할머니. 하나의 계절을 하나의 장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장으로 구성하고 쓴 날짜(연도)는 뒤섞어 계절별로 담았다. 오늘 무엇을 했다는 사실과 그날의 느낌을 정직하게 쓴 짤막한 기록의 모음이다.
계절의 변화와 그에 맞춰해야 하는 농사일, 잘 자라거나 자라지 않는 농작물의 근황, 비 오고 눈 오는 날씨 상황, 그날의 몸 상태 같은 것들이다. 새 우는 소리, 꽃 피는 모양, 달라지는 이파리 색깔, 감자, 콩, 깨, 고추씨 뿌리고 키우는 일상을 말한다. 마을회관에 다녀온 일, 장에 가서 나물 판 일, 어디에 이만 원, 어디에 칠천 원을 쓰고 얼마가 남았다는 가계부도 있다. 오랜만에 다녀간 자식과 밥을 먹었는지 얘기 나눌 틈이 없었는지, 전화가 어디서 왔었는지도 적었다.
할머니는 강원도 양양 서면 갈천리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차로는 20분 걸어서는 5시간 걸리는, 옆 마을 송천리로 시집와 아들 둘 딸 셋을 낳고 키웠다. 외상 술값 갚아주기 바빴던 남편이 먼저 죽고 시모까지 보낸 뒤로는 송천리에서 쭉 혼자 지냈다. 아홉 살 때 잡은 호미를 놓지 않고 평생 일 했지만 어렵게 살았다.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형제들을 구박하는 새어머니가 왔다. 아버지는 여자가 배우면 팔자 사나워진다고 글자를 가르치지 않고 삼 삼고 풀 메는 걸 가르쳤다. 너무 글이 배우고 싶어 공부하는 오빠 어깨너머로 본 걸 아궁이 앞에 재를 긁어다 그 위에 '가'자 써보고 '나'자 써보며 혼자 글을 익혔다. 그마저도 남편과 시모가 죽기 전까지는 (글자 아는 걸) 숨겨야 했다.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1987년부터 일기 쓰기를 시작해 30년을 이어왔다. 이런 역사는 일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책 말미에 손자가 쓴 내용이다. 일기에는 할머니의 하루들만 있다.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맑은 할매의 담백한 일기다. 생활에 자연이 녹아 있고 자연에 생활이 겹쳐 있다. 자연주의 서정 시인의 초월적 시처럼 읽히다가도 툭하고 나오는 회한의 말을 마주할 때면 고전 소설을 읽다 느끼곤 하는 그, 가슴에 퍼런 먹이 번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비슷비슷한 날들을 그저 살아가는 할머니의 하루하루가 영화처럼 그려진다. 오늘 있었던 일에 더해 노년의 외로움,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자연과 사람에게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담담하게 쓰인 일기가 오만 잡스러운 생각들로 어지러운 내 일기장을 비춘다.
가끔 오는 쎄빠또(수다스러운 동네 친구)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대서 영 짜증스럽기도 하고, 나름 책임감을 가지고 비가 오지만 불 보는 차례라 마을회관에 갔다가 사람들한테 비 오는데 불을 왜 보냐는 타박을 듣고 ‘이런 소리나 듣고 살아야 하나’ 속상해하기도 한다. ‘곡식이 귀여워서‘ 키우는 게 재밌다는 할머니.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기도 한 것 같다는 말이 약간 뻐기는 듯하다. 어느 날은 ‘새가 대들어’ 열받고 또 다른 날은 일 안 하는 까마귀가 부럽다. ‘밤에는 그렇게 안 오던 잠이 책만 펼치면 쏟아져’ 얼마 못 읽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재밌어서 자꾸 읽다 저녁을 맞기도 한다. 나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은 구석이 반갑다. 가지 않는 시간과 덩그러니 앉아 있는 적막한 날들도 있다.
돌멩이 위에 도토리를 두고 망치로 깨려는데 자꾸 딴 데로 튀어서 욕을 냅다 하고 혼자 웃기도 하는 할머니. 가끔 꺼내 어디를 읽어도 늘 좋은 글. 할머니 글에서는 일상에서 느끼는 환한 기쁨과 문득문득 찾아오는 서늘한 외로움이 동등하게 대우받는다. 손주 말이 할머니는 '글이나 일기를 쓴 게 아니라 글자를 썼다'고 했다. 나는 머릿속 목소리가 지어낸 이야기를 써서 할머니 일기와 다른 걸까. 사는 일에 대한 숙련도 차이겠지. 생각과 씨름하고 이야기에 옭아매여서는 얻을 수 없는 내공이다. 눈 돌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오래 쌓아 거둔 힘.
할머니도 종종 서글픈 마음을 말하고 ‘생각을 덧붙여 무엇 하나’하고 일기를 마쳤다. 그런 걸로 봐서 ‘지금 여기’를 사는 일이 늘 잘 된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시끄러운 생각을 흘러 보내려 애를 써야 하는 날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지금도 어디서든 글자 연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할머니 글자를 닮은 꾸밈없는 글을 쓰고 싶지만, 내 글은 나를 닮아 할머니 글자와는 다를 거다. 나의 삶을 살아내고 '나의 글자'를 연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