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글쓰기

자기돌봄

by 이파리


작년 이맘때, 중요한 시험을 하루 앞두고 심한 두드러기 증상이 시작됐다. 주변에서는 ‘시험 스트레스가 컸구나’라는 반응이었다. 뭐라 설명할 순 없었지만, 단순히 시험으로 인한 일시적인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총체적으로 망가진 몸 상태를 알게 된 계기가 됐다.

두 달 전 1차 시험, 한 달 전 2차 심사를 통과한 후부터 내 상태는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이미 탈진한 마라토너였다. 결승선이 보이는데 더 이상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 3차 시험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각성이 일어나 주의집중이 좋아지고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향상되는데, 준비 기간에도 시험 당일에도 아무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였지만 ‘배짱이 좋아졌나?’ 하고 넘겼다. 주유소 앞 풍선 인형처럼 흐물흐물한 정신으로 시험장에 갔다.


돌이켜 보건대, 의식 아래에서는 2차 시험 통과 후 '여기까지 온 걸로 됐다. 더 이상 못한다.' 결론 내렸던 것 같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자 파업한 것이었다. 3차는 내년에 치르는 걸로 깔끔히 포기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지혜롭지 못했다. 더 이상 시험 준비를 할 여력이 없었는데 쉬어야 할 때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고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1년쯤 늦게 봐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유연함이 필요했는데 미련하게도 시험 연기는 아예 선택지에 없었다.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일수록 두려움과 불안이 커져 판단력도 흐려지고 더 고집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때 필요한 건 힘든 상태를 자각하고 무리인 걸 인정하고 계획을 바꾸는 일이었는데.


1년이 훌쩍 지나 이달 말에 3차 시험을 다시 본다. 한동안 공부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었다. 7월의 마지막 날 시집을 읽다 문득 알아차렸다. 조금씩 버겁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계획했던 100일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매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다는 걸.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해 오던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다. 다 할 수 있다고, 바꾸고 싶지 않다고, 하던 대로 계속 이어가 보겠다는 고집. ‘익숙한 패턴인데?’


지금 중요한 게 뭔지, 내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도 차분히 정리해 보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마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힘들게 만든 습관인데 느슨해지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있었다. 숨어있던 마음은 두려움이었지만, 이제 글쓰기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발견했다. 브런치에 매일 글을 발행하지 않더라도 매일 쓰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매일 발행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50일간 매일 썼다. 수고가 많았다. 즐거웠지만, 당분간 시험 준비에 집중해야 떨어져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매일 발행은 멈추지만, 매일 쓰기는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지는 모르겠다. 내 몸 상태와 상황에 맞는, 무리되지 않는 적정선을 찾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까르르 웃고 노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르지 않은데 삶을 대하는 자세가 자꾸만 달라진다. 아이들처럼 살아야지. 아프면 울고, 배고플 때 먹고, 힘들면 쉬고. 놀이에 완전히 빠져 매 순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아이들처럼.


때로는 멈추고 미루고 포기하는 게 자기돌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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