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싸우는 우리 남매에게 엄마는 (당시 보통의 엄마들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조건 참으라고 하니 누나인 나는 억울했고 나름의 이유가 있는 남동생은 분해서 씩씩거렸다. 앙금만 남기고 싸움은 반복됐다. 싸우면서 큰다고 하지만 건강하게 싸우고 컸으면 더 좋았을걸,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2살 터울의 나의 자녀들과 등교 전쟁터로 향한다. 눈뜨자마자 서로 먼저 일어나라고 옥신각신, 자기 물건 허락 없이 만졌다고 으르렁거리고, 양치 네가 먼저 해라, 현관문 먼저 열겠다고 나가는 순간까지도 열심히 싸운다. 그만 싸우라고 타이르고 혼을 내도 소용이 없다. 문득 화내는 내 모습을 보니 엄마에게 들었던 말을 남매에게 반복하고 있었다. 첫째의 의무를 강조하고 둘째에게 예의를 강요하는 말을. 앙금만 남기는 남매 싸움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갈등 상황에서 절충안을 찾는 방법이 무엇일까?엄마로서 어떻게 잘 중재할 수 있을까?
중용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지점에 눌러 앉히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할까.” - 『말의 품격』(이기주), 64p
극단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일을 중용(中庸)에서 찾은 작가의 해석이 와닿았다. 갈등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해 절충점을 찾아 모두가 실리를 챙기는 것.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중용, ‘유연한 흔들림’이 아닐까. 남매의 싸움에서 중용하고 싶어 아이들을 관찰해 보았다. 내 방, 내 장난감, 내 옷 등 각자의 소유가 확실한 부분에서는 덜 부딪혔다. 하지만 함께 쓰는 공간이나 공동 소유인 부분에서 다툼이 잦았다. 싸움의 진행 양상을 지켜보니 첫째 아이는 싸우는 것도, 엄마에게 혼나는 것도 싫어 대충 사과하고 상황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반면에 둘째 아이는 본인의 의견만 관철시키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 같은 첫째 아이에게는 의견이 다르면 싸울 수도 있는 거라고, 그래야 서로의 마음을 알고 다음부터 덜 다툰다고 조언한다. 둘째 아이의 말은 일단 들어준다.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 못해 씩씩거리던 남동생이 생각나기에. 아이가 어느 정도 말을 끝내면 그제야 나의 입을 연다(버럭 하지 않고 조곤조곤,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면서).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 오빠가 꼭 양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네가 오빠를 존중해야 오빠도 너를 존중한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첫째 아이의 편을 드는 걸까. 둘째 아이가 "엄마는 오빠 편만 들어"라고 얘기하며 울먹이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럴 때는 딸에게 달콤한 망고주스를 내밀며 살포시 안아준다. 중용보다 허그가 필요한 순간임을 알아차리는 것도 엄마 몫이라는 생각을 하며.
하교 후 싸움의 순간, 우선 맛있는 중용인 젤리를 남매의 손에 쥐여 주며 붉으락푸르락하는 그들을 진정시킨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남매와 함께 중용을 연습할 시간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서로의 장난감과 필기도구는 상대방에서 물어보고 쓰기, 오빠 방에서 가루 많은 과자 먹지 않기, 젠가 할 때 처음에 정한 규칙 바꾸지 말고 지키기, 아침에 교대로 먼저 일어나기, 현관문의 열림 버튼은 동생이 누르고 손잡이는 오빠가 잡고 함께 문 열기 등의 협상안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과정은 귀찮고 피곤하다. 하지만 가정에서 중용하다 보면 사회에서도 중용할 것이다. 살면서 겪게 되는 갈등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테다. 엄마의 압력으로 중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절충점을 찾아보렴, 남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