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즐겨보는 영상 속 유튜버들이 최근에 부모가 되었다. ‘흔식이’라 불리는 갓난아기의 탄생을 남매는 함께 감격하고 기뻐했다. 그런데 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던 아들이 갑자기 훌쩍이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낳았구나. 낳아줘서 고마워. 근데 아기를 낳으면 엄마가 되는 거네. 나를 낳아서 엄마라는 직업이 탄생했네요.”
철없고 어리다고만 여긴 아들이 어느새 자라 모성의 위대함을 느끼고 자신을 낳아서 엄마라는 직업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니, 이보다 더 기특하고 참신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엄마의 사랑과 수고를 알아주는 그의 마음이 감동적이라 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생명 탄생의 감격에 젖어있는 아들을 힘껏 안아주었다. 감성적인 모자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반짝거리는 아이의 말을 메모장에만 두긴 아까워 흐르는 눈물을 닦고 기록으로 남긴다.
하루를 살아갈 때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 엄마.
아이를 낳으니 자연스레 엄마라고 불리게 되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엄마”라는 호칭이 익숙하기도 하다. 아이를 낳은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엄마의 탄생은 아이를 낳으면서 시작된다.
대체로 맡은 바를 수행하는 역할의 시선으로 엄마를 보는 것 같다. 엄마의 역할은 한둘이 아니다. 그녀들은 우선 자녀의 건강과 위생 담당자이다. 작은 생명을 보호하고 돌보는 일에서 시작해 애정이 담긴 간호와 양호는 자녀들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감정적 교류를 통한 인성 발달과 정서적 역할, 사회화 과정의 기본적 틀을 형성해 준다. 아이가 태어나 최초로 접촉하는 사람은 엄마이기에 엄마의 품 안에서 느낀 모성에, 신뢰감, 안정감은 자녀의 정서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엄마의 행동과 생활 태도는 아이에게 표본이 되어 사회를 간접 경험하게 한다. 자녀가 성장한 후 성인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교육 담당자, 아빠와 자녀 사이, 사회와 가정 사이의 교량적 역할도 담당한다. 맡은 역할이 이렇게나 많다니, 누가 뭐라고 해도 엄마는 대단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흔히 적절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을 직업인이라 한다. 모든 직업은 금전적인 보수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금전적인 보수만이 적절한 대가일까? 엄마인 나는 “아니오”로 대답하고 싶다. '엄마'라 불리는 이들은 독특하다. 그녀들은 금전적인 보수를 받지 않아도 맡은 일들을 척척해내며, 다양한 역할을 기꺼이 수행한다. 나의 자녀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의 가정을 향한 깊은 사랑으로.
엄마는 시간이라는 대가를 받는 특별한 직업이 아닐까. 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란 아이는 올바르고 구김살 없이 자랄 뿐 아니라 부모에게 형용할 수 없는 감격과 환희의 순간들을 선사한다. 자신을 낳아서 엄마라는 직업이 탄생했다고 말하는 아들을 보는 감격을, 엄마는 아이를 낳은 선생님이라고 표현하는 딸을 마주하는 순간을. 그런 순간들이 여러 겹 포개지니 육아의 고달픔이 덜 신경 쓰인다. 자녀와 가정을 위해 쏟아부은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마음과 힘을 다한 엄마들에게 적절한 보상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엄마의 역할이 조금씩 줄어들면 그들에게 쏟아부은 시간은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엄마의 손길이 여전히 많이 필요한 어린 남매를 양육하며 일할 상황이 되지 않아, 내 뜻대로 재취업의 문이 열리지 않아 좌절한 적이 여러 번이다. 어쩔 수 없이 경력 정지의 순간을 보내지만 쓰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정직한 돌봄의 시간'인 지금을 남매와 함께, 그리고 혼자서도 잘 보내려고 애를 쓴다. ‘엄마’라는 직업에 최선을 다해본다. 이시기를 건너가면 나의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고, 내 성취를 드러낼 기회를 잡아 “○○엄마” 외에 직위가 들어간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다가올 그날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여기며, 매일 차곡차곡 나의 것을 쌓는다.
지금 나의 직업은 엄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가치 있는 직업을 갖게 해준 나의 아이들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