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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May 24. 2024

나는 글쓰기 왕, 너는 패션왕.

글쓰기 왕.

9살 딸이 학교에서 가족 소개 활동지에 쓴 내 별명이다. 아이의 다정한 그림과 참신한 별명에 내 입꼬리는 슬금슬금 올라가 내려올 줄 몰랐다. 공모전 준비, 글쓰기 수업의 숙제, 브런치와 블로그 글쓰기로 인해 자주 노트북과 씨름하는 엄마의 모습이 좋아 보였던 걸까. 아이가 생각하는 ‘글쓰기 왕’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글쓰기 왕, 엄마 마음에 쏙 들어. 멋진 별명 고마워. 근데 글쓰기 왕은 어떤 사람이야?”

“잘 하면 ‘왕’자 붙이는 거야. 엄마는 매일 쓰니까 글쓰기를 잘 하잖아. 나는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니까 매일 그림 그리고 옷 책 봐야겠다."     


귀엽고 당찬 딸의 대답이다. 아이는 그 분야를 잘 하는 사람, 전문가를 ‘왕’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프로(professional)라고도 불린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쓰기 프로가 되기를 꿈꾼다. 블로그나 SNS, 글쓰기 플랫폼에서의 공감과 인정을 넘어 공모전 수상, 칼럼 기고, 책 출간 등 공적인 영역에서 내 글이 인정받기를 바란다. 딸의 대답을 곱씹으며 어떻게 하면 글쓰기 프로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매일 책상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딸이 글쓰기를 잘 한다고 여긴 것을 보면, 매일 써야 글쓰기 프로다워질 것 같다. 운동, 악기 연주처럼 글쓰기도 매일, 꾸준히 해야 실력이 느는 법. 그냥 어쩌다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없기에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 할지라도, 매일 쓸 수 있어야 한다.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는 취준생 엄마로 다소 평범한 삶을 사는 나에게 쓸 거리가 별로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글쓰기를 통해 세심한 시선으로 일상을 살피자 쓸 말이 넘쳐나는 것이 아닌가. 블로그 필사 모임 ‘꿈필’에서 리더가 올려주는 문장을 필사한 후 그 문장에 대한 내 생각을 적으며 매일 쓰는 힘을 기르고 있다.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이윤영, 가나출판사, 2020)를 읽으며 작가님이 만든 일정표대로 매일 썼더니 어느새 글쓰기 미션 노트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64일 동안 완성한 30개의 메모는 블로그 카테고리의 한 꼭지를 차지하였으며, 매일의 기록들은 귀한 글감이 되어 계속 쓰게 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했다.     


매일 쓰자 더 잘 쓰고 싶은 갈망이 생겨 검증받은 글쓰기 프로의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김한솔이 작가님을 통해 선명한 주제가 드러나는 촘촘한 구성의 에세이 쓰는 법을 배워나갔다. 매주 내주시는 숙제를 잘 하고 싶은 욕심에 글에 뭘 많이 담아 간 날은 작가님의 피드백이 넘쳐났다. 좋은 것들을 더하면 좋은 글이 될지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작가님의 피드백을 적용해 내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깨달았다. 글쓰기 초보는 덧셈을, 글쓰기 프로는 뺄셈을 우선으로 한다는 사실을.

진정한 프로는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고 확실한 효과가 기대되는 한두 개의 자원에 집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목과 용기라는 자질이 필요하다. 어떤 것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볼 수 있는 안목, 버려야 하는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 글쓰기에서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쓰기의 꽃’이라 불리는 퇴고하기에서 더욱 요구되는 능력이다. 어색한 문장을 자연스럽게 고쳐 쓰는 과정에 더하기보다 빼기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주제에 부합하지 않는 문장, 반복되는 단어, 주어와 서술어의 불일치, 지나친 느낌표와 쉼표 등.

나의 경우 주제에 부합하지 않는 문장을 빼는 것이 가장 어렵다. 무릎을 딱 칠 정도로 감탄하며 쓴, 아끼는 문장을 넣고 싶은 욕심에 이것저것 다 넣으면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된다. 주제에 맞지 않는 문장은 글의 흐름을 방해하고 산만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에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내야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흐름이 매끄러운 글이 완성된다. 이번 글에서는 과감히 빼고 다음 글을 기약해야 한다. 아껴놓은 문장은 언젠가 쓸 순간이 오기 마련이므로.     


평범한 삶을 매일 기록하고 메모하다 보니 내 삶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반짝이는 특별한 순간들을 붙잡아 두고 싶어 ‘일상이 특별해지는 글쓰기의 쓸모’라는 브런치북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어쩌다 한번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쓰는 사람, 더하기보다 빼기를 잘 하는 글쓰기 프로가 되고 싶다. 그래서 빼고 또 빼며 이 글을 완성했다.     


딸아, 엄마는 글쓰기 왕이 될 거야. 너는 사람들에게 예쁜 옷을 만들어주는 패션왕이 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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