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쓰게 하는 실패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안으로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성공. 이왕이면 성공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라며, 우리는 그 문을 열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간다. 손잡이를 여러 번 돌려 보기도 하고 문을 힘껏 밀기도 하면서.
2년 전, 9년의 경력 정지를 끝내고 재취업의 문을 드디어 열었다. 오랜만에 이룬 성공이기에 뿌듯함과 자신감으로 어깨가 으쓱했다. 다이어리도 쓸 여유도 없이 바빴지만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SNS에 자랑인 듯 아닌 듯, 결국은 내 성취를 늘어놓으며 사람들의 시선에 도취돼 살았다. 그러나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은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퇴사 통보는 나를 실패라는 늪에 빠트렸다. 그 안에서 허우적대다 뭐라도 잡고 싶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이상하게 괜찮아지는 것이 아닌가.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며 힘든 마음을 풀어놓으니 인생의 번뇌가 해소되며 상처가 치유되는 듯했다. 또한 일기를 쓰니 육아와 인간관계에서 실수가 줄어들었다. 실수 후 자기변명과 자아성찰, 앞으로의 다짐을 적으며 나름의 정리를 해 놓으니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결정의 순간 현명함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퇴사 후 당장 할 일이 없게 되어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인천시민대학 <내 삶, 쓰고 전자책 출판까지(에세이)> 강의를 들었다. 울림이 있는 강사님의 질문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내 삶을 쓸 수 있었고, 15가지 질문들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엮어 『마흔의 질문들』이라는 전자책을 냈다. 이 과정을 통해 질문은 글쓰기에 시동을 거는 일임을 깨달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사롭게 넘기지 않고 면밀하게 살펴보고, 내 일이라고 여기며 들여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그 질문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답을 찾다 보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도 한다. 문답의 과정을 끊지 않고 이어 나가면 통찰력 또한 생기지 않을까.
다이어리조차 쓰지 않았던 내가 지금은 안 쓸 이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글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쓰기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넘어 남도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블로그에 손을 담갔다.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김한솔이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였고, 수업을 마친 후에도 글쓰기 수업 동기들과 자발적인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실패 후 지금 가장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라,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욕망이 나를 쓰게 했다. 또한 실수를 줄이기 위한 소망과 노력,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글쓰기의 성장과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글쓰기의 성장을 바탕으로 나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게 되었고, 입사 지원한 박물관의 서류 전형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필기시험에 임했고 결과 발표날,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아쉽게도 지원자께서는 필기전형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시 한번 저희 000 박물관 채용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원자들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하면 시험의 난이도를 조절했어야죠, 궁시렁대며 애먼 노트북의 화면을 탁 닫아버렸다. 또 실패다.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했던 취업의 문은 손잡이조차 보이지 않는 벽이 되었다.
하나의 문은 벽이 되었지만 굳게 닫혔던 다른 문이 열렸다. 한 번의 실패 후 브런치스토리의 문을 비로소 열어젖혔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안으로 들어와 나를 쓰게 한 실패에 대해 쓰고 있다. 나를 쓰는 인생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끈 ‘성장을 품은 실패’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