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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May 10. 2024

딴짓도 할 건데요?

"딴짓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해."

공부 외의 관심은 모두 딴짓이라는 훈계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돼서도 딴짓은 쓸모가 없고 헛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취미라고 할 것도, 나만의 확고한 취향도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꼭 페이지 수는 많지만, 그 속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모르는 비어 있는 스케치북 같았다. 그런 나와 달리 남편은 딴짓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거의 매일 일렉 기타 연습을 했고, 요즘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유명한 연주를 보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타 연주 영상을 볼 때 그의 초롱초롱한 눈과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뭐가 저렇게 재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딴짓은 모두 쓸모없고 불필요하다고 여겼는데, 왜 그는 돈을 벌지도 못하고 유명해지지도 않는 딴짓을 하며 행복해하는 걸까. 한참 동안 그 질문은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음에 맴돌았다.

인생의 이런저런 부침을 겪던 마흔 살.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올바르고 착하게 살던 인생의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내 인생 첫 딴짓의 시작점이었다. 첫 딴짓은 일기 쓰기였다. 쓰다 보니 예쁜 손글씨에 관심이 생겼고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졌다. 예전의 나라면 쓸모없는 일에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해보고 싶어졌다. 캘리그래피와 글쓰기 수업이 나에게 딴짓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내 인생은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페이지 수만 많고 비어 있던 스케치북이 새로운 풍경화로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얼마 전에는 집 앞의 다이소를 두고 공원 2곳을 지나야 나오는 매장까지 걸어서 가는 딴짓을 해보았다. 왕복 3km 거리의 다이소까지 멀티탭 하나를 사기 위해. 몸이 좀 고생했고 평소보다 비용도 약간 더 들었다. 하지만 단조로운 일상에 생기를 더해주었고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걷다 발견한 동네 맛집을 주말에 가족과 방문했으니 건강해지는 딴짓이라 할만하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겐 딴짓이 필요하다. 고된 하루에 활력소가 되며 일상에 잔재미를 안겨주기도 하기에. 그래서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또한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와 전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섬세하게 살필 수 있다. 나의 경우 글쓰기라는 딴짓은 나를 들여다보며 상처로부터 치유받게 해주었고,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쓰기 위한 관찰과 사색을 통해 명확한 사고를 하게 하고 의사 결정력을 높여 실수를 줄여주기도 한다. 직접 써보고 배워보니 글쓰기는 나에게 여러모로 이롭다.

"글쓰기 수업 가? 이력서 써야지."
"글쓰기 배워서 뭐 하고 싶어?"
"글 쓰면 뭐가 나오니?"​

간혹 이렇게 묻는 이들이 있다. 예전의 나처럼 딴짓은 쓸모없다고 여기는 그들의 질문에 내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또박또박 쓰는 소리가 들렸다.

“글 써서 남 주려고 글쓰기 수업 가. 그리고 더 나은 사람, 부모가 되려고 써. 너도 써볼래?"​

딴짓이라 여겨온 글쓰기에 대한 의구심은 어느새 확신으로 바뀌어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당분간은 이 딴짓의 세계에 푹 빠져 보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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