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육아의 번뇌 해소에 이로웠다. 한 생명을 기죽이는 오염된 언어와는 멀어지고 있으나 아이의 삶을 자라게 하는 언어 레시피는 미완이다. (중략) 서툴고 거칠더라도 내 느낌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표현한다면 아이의 삶을 북돋우는 엄마의 언어가 만들어지겠지. -『쓰기의 말들』(은유), 37p
육아의 번뇌를 글쓰기로 해소한다니, 글이 삶이 된 작가의 고뇌가 엿보인다. 엄마의 느낌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표현한다면 아이의 삶을 자라게 하고 북돋우는 엄마의 언어가 만들어지기에 글쓰기가 육아의 번뇌 해소에 이롭다고 작가는 말한다.정말 그럴까? 글쓰기의 어떤 점이 육아의 번뇌 해소에 이로울까?
글쓰기의 세계가 끝이 없듯 육아도 그러하다. 한고비 넘기고 한숨을 돌리면 또 다른 것이 온다. 갑자기 닥친 상황에,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과 행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육아를 잘하는 길이리라.그런데 유연함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 나름의 훈련이 필요하다. 남매 싸움, 생떼 부리는 아이, 엄한 선생님이 싫어 등교를 거부했던 딸, 함부로 대하는 친구 때문에 매일 울었던 아들,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기보다 버럭 하는 내 모습 등 여러 상황 속에서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여러 갈래로 나뉘는 마음을 정돈하고자 쓰기 시작했다. 때론 자기변명을, 어느 날은 자아성찰을, 다른 날은 사랑이 담긴 당근과 채찍의 말을. 앞으로의 다짐을 적어보기도 하면서 나름의 정리를 했던 것 같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그때의 정리를 떠올리며 실수를 줄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쓰면서 아이의 교실 속으로 따라 들어가고 싶은 날의 불안감을 이겨냈고, 아이도 엄마의 정리된 말을 들으며 힘든 상황을 헤쳐나갔다.
관찰과 글쓰기라는 훈련을 통해 나의 언어는 변하고 있었다. 쓰기 전보다 선명하고 유연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남매를 훈육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 훈련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아이의 삶도 내 삶도 자라게 하는 엄마의 언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학원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아이의 삶을 북돋우는 엄마의 말을 만드는 일. 이것이 글쓰기를 통해 육아의 번뇌를 해소하는 길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갑작스레 별다른 준비 없이 엄마가 되었다. ‘엄마 되기’ 수업이라도 수강하고 엄마가 되면 좋으련만. 그래서 서툴고 처음 해보는 엄마 노릇이 썩 맘에 들지 않을 때도 많다. 애를 쓰며 아이들을 양육하지만, 부모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해보지 않았고 배운 적도 없는 육아. 가르쳐 준 이가 없기에 정답도 없으며, 갈수록 불친절한 안내판이 있는 길을 걷는 듯한 육아. 하지만 글쓰기를 만나고 육아의 방향성을 잃지 않으니 혼잡한 인생의 사거리에서 이정표를 만난 기분이다. '글쓰기'라는 뚜렷한 이정표를.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가보련다.